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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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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20. 3. 22. 23:37 카테고리 없음

    텃밭이나 정원 가꾸기 등 식물을 키우는 일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정서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노력을 통해 뭔가 내 손에 결과물을 쥘 수 있다는 체험도 아이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경험입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학교에서 텃밭 농사를 짓다 보면 처음에는 신기해 하면서 열심히 참여하던 아이들이 금방 흥미를 잃어가곤 합니다. 어른들은 텃밭에서 재배하는 각종 채소나 과일들이 맛있고 몸에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으로 동기부여를 받지만 막상 요즘 아이들은 공산품 식재료가 아닌 야채나 과일을 잘 안 먹기 때문에 그닥 동기부여가 되지를 않습니다. 예쁜 꽃들과 멋진 잎을 자랑하는 식물들로 마당을 가꾸는 일에도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입시공부에 쫒기는 요즘 학생들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추구할만 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한동안은 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들을 재료로 해서 아이들이 즐겨 먹을만 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상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면서 농사일에 참여하기를 독려하기도 했습니다만 뭔가 좀 더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올 해 성문밖학교에서는 학교 텃밭에서 100%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물들을 로컬 마켓이나 벼룩시장 등에 내다 팔아 볼 생각입니다. 자기 손으로 정성껏 키운 농산물을 팔아 작지만 돈을 벌어보는 일은 학생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단체 운영경험이라는 교육활동으로 연결시키고자 학교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올해 1학년 학생들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올해에는 정원가꾸기를 단지 조성된 화단에만 국한하지 않고, 요즘 많은 학교나 기관에서 시도하고 있는 '녹색커튼' 만들기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녹색커튼이란 건물 외벽이나 옥상에 식물을 재배하여 건물의 온도를 3,4도 정도 떨어뜨림으로써 건물의 미관을 높이고, 여름철 냉방비를 절약하는 것을 말합니다.

    싱그러운 덩굴식물들이 우리학교의 건물 외벽에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여름이 기다려집니다.

    광주 수완초등학교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5. 17. 15:12 카테고리 없음

    ‘얼룩말’은 검은 바탕에 하얀 줄 … 현실 바로보기

    [리뷰] 『철학은 내 친구』(위기철, 청년사, 1993.)

    철학은 꼭 학문적으로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철학은 내 친구』의 저자 위기철 씨는 칼럼을 쓰던 작가였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철학책들을 다수 썼다. 그래서인지 책은 참 읽기 쉽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쉬운 설명과 논리로 책은 술술 읽힌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얼룩말 무늬’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하얀 바탕에 검은 줄이 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만약 흑인들이라면 어떨까? 그들은 검은 바탕에 하얀 줄이 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나를 규정하는 현실은 나의 사고마저 제약할 수 있다. 실제를 실제처럼 보고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예시이다.

    이 책은 총 여섯 가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철학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이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는 바른 인식을 위한 여정을 담았다. 진리에 도달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인식을 인식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저자는 의식과 개념보단 현실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실이 있고 의식이 있는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댄 결과다. 마르크스의 스승인 헤겔은 정신의 우월성을 논했다. 아마도 1980∼9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학습을 하던 습관이 저자의 의식도 규정한 건 아닌가 싶다. 의식이 먼저냐, 현실이 먼저냐는 철학 계에서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인간을 과연 사람으로 간주해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태아를 수정 후 몇 주 후까지 인격체로 간주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의식과 현실, 무엇이 중요한가

    그럼에도 개인은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자유롭고자 하는 개인은 홀로 존재하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자유를 부여하는 건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속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자유를 얻기 위해선 함께 나서야 할 때가 많다. 개인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 공동체 속에서 가능하다.

    철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모든 사람은 세계를 해석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세계를 긍정적으로 혹은 회의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세계를 바라볼 때는 더욱 구체적이고, 현명하게, 올바르게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이다. 과학이라고 해서 철학에 반대되는 개념이 절대 아니다. 체계적이고 논리적 사고 과정이 바로 과학이고, 철학의 바탕이다. 깊고 다양하게 사고하는 게 바로 철학이다.

    저자는 “철학을 탐구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현실 생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해.”라고 조언한다. 철학은 관념과 실천의 조합이나 실천을 이끄는 건 의식이다. 따라서 자신의 현실을 예민하게 관찰하며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욱이 저자는 “존재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존재하다보니 목적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사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 지향성에 반하는 말이긴 하지만, 철학적 바탕을 현실에 두려는 맥락에서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말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엔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다.”이란 말이 나온다고 한다. 아무리 철학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필요한 건 변화를 이끌어내는 의지다.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건 올바른 철학적 세계관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연쇄고리일 것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5. 8. 11:04 카테고리 없음

    신동엽의 시들회고주의가 아닌 내일을 위한 잠언

    [서평]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김응교, 인병선 저, 소명출판, 2019. 03.20)

     

    누군가를 깊이 알면 사랑하게 된다. 사람 자체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는 시인 신동엽의 생애와 인간적인 면면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책을 읽으며 시심을 키웠는지, 어떤 분들과 가깝게 지냈는지, 가족 관계는 어땠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신동엽 문학상은 문인들이라며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는 신동엽 시인의 문학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역량 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1982년 공동으로 신동엽 창작 기금을 제정한 것이 시작이었다. 신동엽 시인은 식민지의 배고픔과 참담한 6.25전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의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또한 짧은 시뿐 아니라 긴 서사시, 극시, 오페라까지 만든 실험적인 형식들을 여럿 선보였다.

     

     

    시 창작에 영향을 준 어린 시절과 아내

     

    신동엽의 시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회고주의가 아니다.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어린 시절 신동엽은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병으로 결석이 잦았고 크게 건강하지도 않았다. 이는 훗날 신동엽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는 하나의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매일 싸움을 했다. 이 사건은 신동엽이 체험한 최초의 분단이었는데 당시 신동엽은 중립을 바라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어느 날 신동엽은 소집 영장을 쥔 채 국민방위군으로 대구에 수용 당하게 된다. 1951 4 30일 국민방위군이 해체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집한 군인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낙동강변을 지나던 신동엽은 배고픔을 참다못해 딱딱한 게를 잡아 날로 먹고 말았다. 그런데 이는 신동엽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디스토마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도 거의 지날 무렵이 되어서야 신동엽은 겨우 기력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신동엽에게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한국전쟁 시기 그가 썼던 메모와 일기문, 습작시를 볼 때, 그의 역사의식은 이미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즈음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던 그에게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훗날 아내가 되고 이후 그의 작품 해석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두 사람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인류애에 이르렀다. 신동엽은 인병선에게 편지뿐 아니라 시를 써서 보내기도 했으며, 군에 가서도 틈만 나면 편지를 보냈고 부대 밖으로 나와서도 항상 인병선을 찾았다.

     

    28세가 되던 1957년 신동엽은 인병선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29세가 되던 1958년 가을에 충청남도 보령에 있는 주산 농업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그는 1년 이상 교사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막 안정된 생활을 하려 할 즈음 그에게 병환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동엽에게 깊은 시를 쓰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신동엽은 한 달 이상 정성을 다해 시를 썼고 30세가 되던 1959 1 3일 드디어 지면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그의 장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신춘문예 입선 작품으로 실리게 되었다.

     

    껍데기는 가라그리고 한민족의금강

     

    신동엽의 시에는 6.25 때 일어난 슬픈 장면이 많았다. 그의 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2화를 보면 <내 동리 불사른 사람들의 훈장(勳章)을 용서하기 위하여. 코스모스 뒤안길 보리사발 안은 채 죽어 있던 누나의 사람을 위하여.>는 구절이 있다. 어느 동네에서 벌어진 비참한 광경을 묘사한 내용이었다. 시에는 동네를 불사르고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 훈장을 받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담겼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무서워 깊은 산으로 도망갔다가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있었다. 시는 코스모스 길에서 죽어 있던 나무처럼, 전쟁 때 죽어간 동네 사람들을 위로하는 슬픈 노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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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 4.19혁명이 일어났다. 신동엽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아픔을 더는 속으로만 담아둘 수 없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모아 책으로 냈다. 1960 7, 신동엽은 4.19 혁명을 노래한 학생과 시민, 작가들이 쓴 시를 모아 엮은학생혁명시집을 펴냈다. 이후 수많은 작품 활동을 했는데껍데기는 가라를 통해 그는 관념의 절정을 밟았고, 1967 12월부터는 전주사범 시절부터 거의 20년 동안 구상해 온 이야기인금강을 쓰기 시작했다.

     

    신동엽의 독서 노트와 일기장을 보면 그는 엄청난 양의 세계문학 작품을 두루 읽고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집필을 위하여 방학 때면 호남을 여러 번 답사했고 설악산과 속리산 등을 찾아가 동학의 유적을 추적했다. 온 정신을 기울여, 밥 먹을 시간도 잊고 원고지에 쓴 글을 읽으며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나중에는 아예 여관방을 하나 빌려서 원고지와 씨름했다. 그렇게 하여 1968년 초 장편서사시금강을 발표했다. 모두 26장으로 이루어진 4,800행의 대작이었다.

     

    옛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이 시에 담겨있었다. 과거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과거는 미래를 위한 거울이라는 사실을 그는 사람들에게 알렸다. 하지만금강을 쓸 때 잠도 안자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탓인지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임진강을 쓰기 위해 문산 지역을 취재하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 받아 군부대에 잡혀 하룻밤을 지내고 온 후 그의 병은 더욱 나빠졌고 결국 간암 판정을 받았다. 1969 4 7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서 향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생전 신동엽은 주말마다 산행을 즐겼다. 산봉우리를 디디고 지팡이를 짚은 채 먼 곳을 바라보는 사진이 많았다. 신동엽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내일을 상상하고, 산 아래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은 한국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정부의 인정을 받은 상태다. 그는 시작을 위해 뼈를 깎는 산고 과정을 겪었고 그러면서 치밀하게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오늘날 시에 담겨 전해지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가족들을 보면 고진감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부인 인병선은 남편과 사별한 뒤 출판사 일과 번역 일을 하는 등 어려운 살림을 일으켰고, 자식들도 모두 대학을 나와 평안하게 살고 있다. 자식세대로 이어진 아버지의 정신과 노력 덕분이었다. 이는 신동엽이 살았던 이후의 모든 자식세대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까지 적용되는 사실일 것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정신이 보인 오늘날 모습은 감히 고개가 수그러질 정도이다. 그러한 정신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한민족을 일으킨 시인 신동엽의 삶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