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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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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2. 21. 20:55 카테고리 없음


    1956년 미국 프린스턴대 조지 밀러 교수는 ‘마법의 숫자 7, ±2’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5개에서 9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송금할 때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단번에 외우지 못하는 건 인간의 작업 기억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밀러 교수의 주장은 어떤 내용을 어느 시점에 외우는지와 일반화라는 측면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다만, 좀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의미 있는 기본 단위를 ‘덩어리(chunking)’로 기억하고 배열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창의적 활동의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구조화하는 능력이 정말 있는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그냥 기본 정보들을 연결하는 게 훨씬 쉬운 설명이었다. 정보들을 위계화하고 배열하는 능력이 어떤 활동인지와 무관하게 별도로 존재하는가? 그런데 최근 생명과학 온라인 저널 ‘e-라이프’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뇌파(뇌전도·EEG)를 이용해 그런 제어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특히 탁월한 작업 기억 능력은 관념적인 정보들을 활용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잘 치는 이들은 박자나 기호들의 규칙, 음표의 조합 등 기본 요소를 하위 단위로 잘 묶어서 끄집어냈다. 노래하거나 춤을 추고 혹은 프로그래밍 등을 하려면 우선 기교의 기본 요소들을 불러내 창의적인 방법으로 정렬하고 재조합해야 한다. 기본 요소들은 응축된 개념으로서 재현 혹은 표상 단계를 거쳐 숙련된 작업으로 나아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과학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기계가 대신할 테니 골치 아픈 교육이 필요하겠느냐는 강한 주장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 오히려 거꾸로 수학·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개념들을 구조화하고 재배치하는 데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연구팀은 뇌전도의 전기적 활성과 진동 패턴들을 측정했다. 이로써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달리 시간적 제약과 다른 요인들이 섞이는 가능성을 배제하며, 뇌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구체적인 모습들을 포착했다. 실험 참가자 88명은 두피에 전극을 달고 복잡하고 순차적인 행동 양식을 수행했다. 이들에게 45도, 90도, 135도 방향의 선분 총 9개가 주어졌다. 3개의 선분이 순차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묶였고, 3개의 덩어리가 정렬되었다. 각 덩어리에서 선분이 배열될 수 있는 방법은 3 곱하기 2로 6가지인데 중복이 허용되므로 6 곱하기 6 곱하기 6, 다시 각 덩어리가 배열되는 방법도 3 곱하기 2로 6가지이므로 경우의 수는 1296가지이다. 다만, 각 덩어리 내 선분들은 언제나 45도, 90도, 135도 방향이므로 실제로 나타나는 건 216가지뿐이다.

    이제 피실험자들에게 각 덩어리와 선분의 배열을 기억하게 하고 테스트했다. 이때마다 뇌전도는 진동 패턴들을 나타냈다. 뇌전도에서 알파 영역대(8∼12Hz)는 기본 요소들을 기호화해 불러낼 때, 세타 영역대(4∼7Hz)는 그 기본 요소들이 정렬될 때 나타났다. 이로써 어떤 기본 요소들이, 어느 지점에서 덩어리로 묶여, 어떤 작업들을 수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친다면 전체 악보에서 어느 마디, 어떤 음표를 연주하고 있는지 뇌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즉, 순간순간 기본 요소들의 덩어리를 지정(addressing)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좀 더 추상적인 수준의 강한 뇌전도 패턴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즉, 복잡하고 연속적인 작업들을 수행해내는 걸 힘들어했다. 결국 작업 기억 능력이 탁월해야 뇌의 현재 특정 영역이 활성화했다. 한마디로, 어느 작업이든 우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며, 종합하는 게 필요했던 셈이다. 뇌가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기억하려면 추상적 재현 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당연하겠지만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 수학·과학이야말로 고도의 추상적 논리와 현상에 대한 분석 및 종합적 사고 능력을 배양해주는 학문이다. 연구진은 이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순차적 지정 시스템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창의성은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건 바로 그 영역에서 기본이 얼마만큼 충실한가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으면 작업 기억 능력은 분명 배가될 것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0. 20. 17:14 카테고리 없음


    프랑스 수학자 로랑 슈바르츠(1915∼2002)는 고등학생 때 본인이 수학을 못한다고 걱정했다. 똑똑하지 못해 수학 문제를 잘 못 푼다고 자책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50년 수학에서 가장 영예로운 필즈상을 수상했다. 슈바르츠는 고전학자와 수학자의 길 중에서 기하학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수학을 선택했다.

    여성 최초의 필즈상(2014년)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하니(1977∼2017)는 중학생 때 수학교사의 질타로 인해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기하학의 난제 중 하나인 ‘모듈라이 공간(modulispace)’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필즈상을 받았다. 모듈라이 공간은 기하학적 분류 문제(다른 모양, 같은 위상)에 대한 일종의 해결책이다. 그녀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딴 적도 있다.

    위의 두 수학자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인 분야는 바로 ‘기하학’이다. 기하학은 수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야다. 만물은 모양을 갖추고 있고, 그 모양을 감싸는 공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하학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뿔나게 했다. 2022년 수능에서 수학·과학의 출제 범위를 축소한다는 교육부의 개편안 때문이다.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약학, 의학 등 과학 관련 학회와 단체들은 현재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핵심은 ‘기하’와 ‘과학II’를 수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목들이 빠지면 이공계의 기초학력이 저하되고 교육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와 과학기술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2018년 제59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7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종합 1위에 비해 6계단 하락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순위가 상승해 오다가 갑자기 여러 계단 하락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을 대학 입시에 쓸 수 없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래서 과학고 학생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해보면 과연 수학의 위상이 한국에서 어떤지 알 수 있다. 수학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 목적 자체가 아니다. 수학적 사고가 잉태하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문화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답습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인지 한국은 아직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학력 저하의 문제는 ‘기하’와 ‘과학II’의 포함 여부나 국제 대회 성적의 입시 반영에만 있는 게 아니다. 더욱 심각한 건 교육과 평가의 방식에 있다. 

    수능에서 수학은 100분 동안 30문제를 풀어야 한다. 수학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돼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느끼는 수학 불안은 최고조에 달한다. 자유롭게 사유하고 자신의 실력을 최대화해야 하는데 5지 선다와 단답형으로 답안을 이끌어내려면 숨이 막힌다. 수학에선 답이 틀려도 과정이 정확히 맞으면 정답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숫자가 틀려도 말이다.

    인구의 약 20%가 수학 불안을 느낀다. 수학을 못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평가와 교사들의 방식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다. 당황하면 사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수학을 잘한다는 건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논리적으로 풀어 헤쳐 나간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답을 잘 찾는다고 좋은 수학자가 될 순 없다. 그렇다면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평가 역시 유연해져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처음 언급한 세계경제포럼은 앞으로 필요한 능력 1순위로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꼽는다. 그 다음이 창의성이나 협업 능력, 감성 지능, 비판적 사고, 판단력, 유연성 등이다.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의 근간은 바로 수학(數學)의 힘이다.

    최근 한 교육 주간지를 보면서 실기시험 없이 체대를 간다는 제목에 눈을 의심했다. 처음엔 의아했으나 ‘와이 낫?(왜 안 되지?)’이라는 물음이 생겼다. 요샌 미대도 실기시험 없이 입학이 가능하다. 물론 모든 전형이 실기가 없는 건 아니다. 학원에서 배운 기능적 실기만으로 미대나 체대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대학은 탁월한 학습 능력을 보인 학생의 예체능적 가능성을 살핀 것이다. 학생의 평상시 관심과 노력의 흔적은 필수다.

    미대나 체대에서도 수학·과학적 능력이 매우 중요시된다. 그래서 대학은 전략적으로 내신과 수능 성적에서 등급 컷이 높은 학생들을 선호한다. 현대의 스포츠는 이미 수학·과학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교육정책의 혼선과 잦은 변화, 나쁜 평가 방식 때문에 학생들은 어떤 수학·과학을 공부해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수학 불안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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