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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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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7. 9. 22:29 카테고리 없음
    #1. ‘감자(강아지)’가 성문밖학교를 떠났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감자’는 어렸을 때 저 멀리 부산에서 남한산성으로 왔다. 그랬던 ‘감자’는 이제 입양돼 캐나다로 갔다. ‘감자’의 운명은 먼 곳을 여행하는 것인가 보다. 학생들은 강아지를 떠나보내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동안 강아지를 사랑하고, 강아지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느꼈을 정은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다. 

    #2. 토끼가 새끼를 낳았다. 토끼는 겨울 동안 성문밖학교 안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이제 울타리와 흙이 곱게 깔린 새집을 얻었다. 굴을 파는 게 습성인 토끼는 여기저기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다. 새끼를 한 번 낳았다가 잃어버린 토끼는 따뜻한 햇살과 함께 행복을 되찾았다. 학생들은 새끼를 잃는 게 어떤 것인지 지켜보았다. 새로운 생명은 굴을 통해 성문밖학교를 파헤치고 다닌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3. 성문밖학교를 지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당나귀를 구경하러 불쑥 찾아온다. 남한산성 길을 가다보면 저 멀리서 하얗고 까만 당나귀 두 마리가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명장면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실례를 무릅쓰고 성문밖학교에 들어온다. 당나귀를 본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성문밖학교 학생들은 매일 당나귀와 교감한다. 암컷은 까맣게 보이는 짙은 갈색이어서 ‘깜지’라고 불린다. 수컷은 털이 하얘서 ‘하당’이다. 암컷이 수컷보다 몸짓이 훨씬 크다. 풀을 뜯기 위해 운동장 울타리를 자주 벗어나는 ‘깜지’와 ‘하당’이. 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하얗고 시커먼 당나귀들이 창문 밖을 지난다. 학생들은 ‘와!’하고 함성을 지른다. 당나귀들의 털을 고르는 것부터 똥 치우기, 물과 먹이주기 등 자잘한 일들을 돌아가면서 한다. 동물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그 어떤 교육보다도 훌륭하다. 

    #4. 가끔씩 ‘음매 음매’하는 소리가 성문밖학교 안에 울려 퍼진다. 바로 염소인 ‘별이’와 ‘달이’가 우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헷갈린다. 누가 암컷이고 수컷인지 말이다. 그게 뭐 중요할까. 성문밖학교 학생 중 한 명이 작성한 '염소에 대하여' 자료를 보면, 염소의 뿔은 절대로 만지지 않아야 한다. 너무 습한 환경이 아닌지 주의하고, 먹이는 건조한 것을 주는 게 좋다. ‘별이’와 ‘달이’는 성문밖학교에 온 지 곧 1년이 된다. 염소는 종종 강아지, 닭, 당나귀들과 싸운다. 싸운다기보단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 같다. 염소의 눈은 사시처럼 양쪽을 향하고 있다. 싸움을 피하는 방법일 수 있겠다 싶다. 

    #5. 성문밖학교가 공식적으로 키우는 동물은 아니지만 고양이가 여러 마리 살고 있다. 창문 밖으로 살금살금 고양이들이 지나가다가 학생들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수업을 하다보면, 교실 밑에서 고양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귀여운 고양이들은 소리와 흔적을 잘 남기지 않는다. 점심때만 되면, 국어 선생님이 고양이들을 살뜰히 챙긴다. 먹이와 물을 주시는데, 학생들도 동참한다. 먹을 것을 주는 게 아마도 동물을 사랑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이 아닐까. 

    #6. 성문밖학교에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이번 겨울, 돼지 두 마리를 데려왔는데 울타리 쳐진 막사를 부수고 달아난 것이다. 덩치가 꽤 있던 녀석들인데, 아직 살아 있을까 걱정이다. 마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처럼 돼지가 탈출했다. 검복리 마을 주위를 수소문 하고 찾아다녔지만 결국 돼지는 미스터리처럼 사라졌다. 동물을 키우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 사건이었다. 

    #7. 아침도 아닌데 닭이 울고 있다. 아, 닭은 아침에만 우는 게 아니었다. 닭은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자신의 새끼가 위협을 받을 때도 울고, 닭들끼리 싸울 때도 울고, 배고플 때도 울고, 목마를 때도 운다. 닭의 운명은 우는 데 있는 것 같다. 

    고양이와 들개가 닭의 새끼를 죽인 적이 있다. 냉혹한 생태계의 피라미드를 학생들은 생생히 목격했다. 동물들은 서로 물고 뜯고 죽인다. 어떤 과학자는 자연의 섭리는 적자생존이라고 했는데, 필자는 다른 생각을 한다. 동물의 세계는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서로 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위하는 측면도 분명 있다. 닭의 새끼를 보호하는 듯 보였던 염소의 행동이나, 토끼의 새끼와 한 울타리에서 오순도순 잘 지내는 강아지, 염소와 교감하듯 나란히 길을 걷는 당나귀 등. 자연의 세계는 적자생존보단 공생이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자연에서 동물들을 만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성문밖학교 학생들은 등굣길부터 여러 동물들과 인사하고 서로 챙겨준다. 학생들이 동물들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들 역시 학생들을 보듬어준다. 동물들은 커가고 학생들도 성장한다. 그 과정 속에서 탄생과 죽음, 이별과 사랑, 다툼과 화해, 독존과 공생, 상처와 치유 등 인생의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개념학습이고 연습문제이며, 대단원 종합평가이다. 

    간디는 한 나라의 품격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했다. 동물을 학대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치를 떤다. 아마도 그들은 동물한테 받은 사랑이 부족했지 않았을까. 그저 하나의 작은 평범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는다. 

    필자가 좋아하는 <날아라 병아리>(넥스트 2집)라는 노래를 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내가 아주 작을 때 /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 내 두 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동물들의 심장 소리를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 고마운 일이고, 가장 행복한 일이다. 어린 시절 각인된 감성은 오래 간다. 잊을 수 없는 동물들의 사랑이야말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광주시민저널> 제52호(2018.7.10-7.25) 교육칼럼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