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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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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0. 18. 21:05 카테고리 없음

    라다크의 큰 지혜 … 자연을 간접 체험하지 말라

    [리뷰]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녹색평론사, 2007)

     

    주간지 <시사IN> 최근호(565호)에 라다크 소식이 실렸다. 한 여행작가가 20년만에 다시 다녀온 곳이 바로 라다크의 도시 ‘레(Leh)’이다. 이곳엔 인구 3만 명이 살고 있다. 여행작가가 설명했듯이 라다크는 여전히 오지이지만, 인심과 문화는 변했다. 느낌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호텔에는 LED 램프가 켜져 있다. 라다크의 밝기 역시 달라졌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92년에 출간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오래된 미래』는 작가의 경험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라다크가 문명에 의해 발견되기 전 그곳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책을 읽어보니, 라다크는 고원의 사막이다. 인도의 최북단 카라코람과 히말라야의 산악에 끼어있다. 중국이 그 옛날 티베트를 공격하자 인도는 라다크에 군대를 파견한다. 그리고 중국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라다크를 외국 관광객에게 개방한다. 그게 바로 1974년이다. 작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에 따르면, 라다크는 티베트 언어인 ‘라-다그스’ 즉 “고갯길이 있는 땅”의 뜻을 지닌 것 같다고 한다.

     



    여전히 오지, 그러나 변한 느낌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일처다부제’였다. 라다크에선 일처다부제와 더불어 일부다체제, 일부일처제 등이 혼합돼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일처다부제가 가능했던 건 남녀노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함께 노동을 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집의 어른은 여자이고, 어머니이다. 아마도 일처다부제가 가능한 것은 라다크 고유의 정신세계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우리 모두는 연결돼 있고, 아이가 아이를 기르고, 내 아이와 남의 아이라는 구분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 책에는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이 표현돼 있다.

     

    외부세계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는 경향이 있는 핵가족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라다크의 가족내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더 넓은 공동체로 확장된다. 때로는 어디까지가 가족이고 어디서부터가 공동체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라다크에선 우리가 그 옛날 ‘아주머니’, ‘아저씨’라고 불렀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친근하고 가깝다. 무엇이 더 낫고 좋다는 호불호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라다크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라다크의 정신세계는 불교에 기반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실체가 욕망과 욕망에 의한 고통을 불러온다고 한다. 나와 너를 분리함으로써 집착, 특히 사물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이 집착은 우리를 끊임없이 새로운 걸 추구하도록 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 불교는 가장 단순하게 보이는 농부부터 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듯 보이는 승려까지 모두가 지닌 섬세한 가치관과 태도가 심오하다고 강조했다.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듯한 태도는 무상함을 직관적으로 이해한 것처럼 작가에게 비춰진다. 집착이 사라지는 건 바로 섬세하면서도 무상무념을 이해한 라다크의 정신세계로부터 비롯한다. 그래서 라다크인 체링 돌마는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한다.

     

    서양의 물질문명에 기반 한 정신세계는 다시, 동양의 이기(理氣)와 마음에 기반 한 정신세계에 눈을 돌리고 있다. 마음과 정신 수양이야말로 행복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삶을 인정하는 시작이다. 라다크 사람은 이번 생이 유일하지 않다고 믿는다. 삶과 죽음은 영원히 회귀하는 양상으로 간주된다. 삶과 죽음이 화해를 하는 순간이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공부의 시작이다.

     

    삶과 죽음은 화해 가능하다

     

    불교를 정신세계의 근간으로 두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라다크의 언어는 ‘상대성’을 강조한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많지 않다. 라다크의 표현에는 유독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등이 많다. 더욱이, 삶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래서 노인들도 계속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을 많이 한다. 이로써 노인들은 건강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고 작가는 적었다.

     

    세상과 자연을 살피는 라다크 사람들의 태도는 삶 속에서 녹아 있다. 개울에서 빨래를 하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어린 소녀가 그곳에 옷을 넣으면 안 된다는 말에 놀란다. 아래쪽 마을 사람들이 물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소녀는 다른 쪽에 있는 개울에서 빨래를 하라고 조언한다. 그 물들은 밭으로 가기 때문이다.

     

    또한 라다크 사람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면 음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큰 동물이 더 낫다고 하기 때문이다. 가축을 죽여야 하는 일은 매우 무거운 일이고, 용서와 기도 후에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그 나라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지표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머물 때만 해도 이미 라다크는 변화를 겪고 있었다. 서구문물은 라다크의 정신세계를 좀 먹고 있었다. 그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한 라다크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세운 NGO를 중심으로, 라다크의 고유문화, 단순히 문화를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더 지속 가능하게 변화하려는 노력도 병행됐다. 모든 변화가 좋은 건 아니다. 그렇다고 단지 머무는 게 나은 건 더더욱 아니다.

     

    서구인이 라다크의 문화를 겪은 것처럼, 라다크인이 서구문화를 겪은 사례가 책 속에 소개되고 있다. 영국에 두달 정도 다녀온 어떤 라다크 사람은 서구에선 모든 게 간접적이라고 꼬집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도, 화분에 담긴 식물과 플라스틱 가짜 자연을 본다. 벽에는 나무를 그린 그림이 있고, 텔레비전은 언제나 자연의 풍경을 칭송한다. 하지만 서구의 사람들은 자연과 직접 접촉하는 일이 드물다. 일이 잔치이고, 자연이 일상인 라다크 사람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즉, 바로 앞에 있는 진리를 멀리, 저 멀리 돌아서 와야만 이해하는 게 바로 우리들은 아닌가.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