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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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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0 11:10 분류없음

‘교육’, ‘혁명’, ‘행복’에 대한 작은 성찰

[서평] 『개인 혁명 (조용하지만 강력한 인생의 기술)』(조은준, 북산, 2019.01.08.)

 

이 책은 레스토랑을 경영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의사인 작가 조은준 씨가 유학 간 아이를 통해 성찰한 기록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 덕분에 왜 그 먼 곳까지 가서 공부해야 하는지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개인 혁명’을 틈틈이 적어나갔다. 책의 내용을 보면 내공이 만만치 않다. 책 중간에도 나오지만 너무 어려운 시나 긴 소설이 아니라 새로운 장르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 새로운 시도가 바로 『개인 혁명』이다.

 

책에서 크게 세 가지가 눈에 띄었다. 우선 ‘교육’이다. 우리는 흔히 재능 있는 학생을 선발하고자 한다. 그런데 조은준 씨는 학생의 재능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교육은 재능이 보이지 않는 학생들에게서 어떡하면 재능을 찾아내어 끄집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재능을 발견하는 건 그 아이의 잠재력을 미래의 관점에서 예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교육자의 혜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대부분의 학생들은 10대이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어른으로서만 인정받는 게 아니라 10대들 역시 다른 시절과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 10대야말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며 존중받아야 할 시절이라는 뜻이다. 창의적인 교육과 인생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서구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교육이 게임이나 도전이 아니라 안전하고 착실하게 따라가야 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발명품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자신을 새롭게 평가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고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도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새로운 관점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교육의 출발점이다.

 

 

재능 없는 학생에게서 재능 발견하기

 

그 다음 책에서 눈에 띄는 건 ‘혁명’이다. 과연 무엇이 혁명인가?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웅은 열정을 계산으로 풀어낸 사람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생활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혁명, 특히 개인혁명이라고 강조했다. 개인혁명은 바로 생활혁명인 셈이다. 그런데 혁명을 한다고 외치면 혁명이 이뤄지지 않는다. 산을 움직이겠다고 세상 시끄럽게 하는 게 아니라 고요하고 깊은 산이 스스로 되는 것이 필요하다.

 

 

혁명은 응당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남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혁명은 교육과 직결된다. 도전하고 불확실성에 모험을 할 수 있는 자만이 몸을 던질 수 있고 호기심으로 세상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가짐은 모험에 나설 때부터 결과를 결정할 정도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가운데 이미 그 결과가 결정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혁명의 여정은 지난하겠지만 천천히 가야 하는 것이다. 빨리 이루려는 건 무한한 시간에 도전하는 것이고 결국 타들어 갈 수 있다. 조은준 씨는 “조급증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는 태양에 가까워지면서 불같은 열기의 따가움을 느끼게 되고 결국 심해지면 병들게 된다.”고 적었다. 이제 자연스레 혁명의 결과인 행복도 성찰해볼 수 있다.

 

산을 움직이지 말고 산이 되어라

 

인생이란 행복보다는 변화의 묘미를 추구하는 게 그 본질에 더 부합한다고 저자는 적었다. 조금 보수적일 수도 있겠으나 운을 좇기보단 움직이지 않는 게 때론 이익일 수도 있다. 그동안 언제나 고요함을 추구해왔는데, 사실 이 고요함을 추구하는 데서 불안과 우울이 나타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에 고요함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걸 추구하다보니 불안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은준 씨는 “어쩌면 약간의 배고픔이 식욕을 돋게 하는 것처럼 약간의 모자람이 있는 과거가 있는 추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면서 “살아가는데 별 방해가 안 되는 일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그것이 삶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해석하며 사는 방법이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제대로 즐긴 적이 있었는지 반문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책을 보면 시간을 할애한 것 자체가 기술이고 행복이라고 한다. 내가 마치 어제 죽은 사람인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다보면 더욱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말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04.08 11:10 분류없음

경험, 집착, 연결과 직관 … 창의성의 패턴

[서평]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열세 가지 지적 탐험)』(더난출판사, 2019. 03.25)

 

4차 산업혁명이 여전히 낯선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 있다.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의 저자 손승현은 책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가 여러분께 확실히 드릴 수 있는 말은 실패한 곳에 멈춰 서지만 않는다면 실패는 더 큰 꿈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문과 출신 혹은 비기술 분야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는 아는 내용들이 많기에 재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4차 산업혁명을 상기시켜주는 감은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발견을 위한 진정한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있다.” 책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4차 산업혁명의 틀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이 복잡하고 불안정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소개한다.

 

 

모든 분야에 걸쳐 있는 초연결 사회

 

저자가 인공지능을 공부하던 때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얻은 책으로 1970년대 미국 작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괴델, 에셔, 바흐』를 꼽았다. 복잡계에 관해 많은 영감을 얻은 책으로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꼽았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다른 분야다. 하지만 어느 분야를 공부하고 무엇을 알고 싶어 하든 간에, 해당 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를 함께 보아야 한다. 정답이 여러 분야가 만나는 경계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시인을 ‘보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볼 수 있다면 시인처럼 세상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세상 전부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눈높이를 자주 바꿔주어야 한다. 눈높이를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무언가를 새롭게 보고 느끼며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갖게 된다.

 

작가는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간단히 말해 ‘초연결’이라고 주장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 사물을 연결하고 지식과 지식이 연결되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지능적으로 모이고 공유되며 분석되는 현상을 초연결이라 한다. 이에 따라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초연결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넘나드느냐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하는 곳에 있기에 ‘융합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복잡성의 세상을 보는 법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의 DNA’를 담고 있는 기업이라 평가받는 넷플릭스는 오늘날 기업들의 리스크를 다음처럼 분석했다. “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회사의 복잡성은 증가하는 반면에 뛰어난 성과를 내는 인재는 줄어든다.” 복잡한 세상을 보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전처럼 사고하는 습관을 멈춰야 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당연시하는 것들을 비로소 의심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새로 나온 기술을 모두 이해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건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입체적인 구조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1960년대 하버드대학 교수 스탠리 밀그램은 ‘우편물 실험’을 했다. 인적이 드문 미국 시골 마을을 임의로 골라 그곳에 사는 주민 160명을 무작위로 뽑아 편지 한 통씩을 나눠주었다. 편지에는 그들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의 사진, 이름, 주소가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봉투에 적힌 사람을 알 만한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그리고 160통의 편지 중 42통이 성공적으로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이때 편지가 거친 단계의 중간 값은 단 5.5단계에 불과했다.

 

대규모 사회라지만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의외로 쉽게 서로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결과였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성공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한 소통 전략 덕분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 세계 팬들에게로 수많은 링크를 통해 입체적으로 연결됐다는 의미다. 다양한 클러스터에 동시에 연결되어 있고 링크 수도 많다면 강력한 허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는 기존 연결고리와 상호 피드백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며 중앙 통제자의 지시나 설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누누이 언급되는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

 

세상은 협업하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만들어가는 시대다. 이에 따라 저자는 책 뒷부분에 걸쳐 고전 서적과 명사들의 입을 바탕으로 창의력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저자는 방송국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한 10여 년 동안 누구보다 가까이서 창의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했다. 이후 저자는 창의성의 패턴을 크게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다양하고 강렬한 경험. 우리의 뇌는 새로운 대상이나 문제를 마주하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이미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기억들을 찾아내 연결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우연히 찾아올 뜻밖의 연결을 기대하며 일단 많은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특히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어느 날 새롭고 놀라운 무언가로 탄생할 커다란 잠재력을 품고 있다. 마치 범죄자를 통해 우리가 사람의 잠재된 본능을 파악하고 세상의 다른 이면을 경험하며 세상을 더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수단으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의외의 집착, 열정 또는 몰입. 집착은 가능한 한 모든 유형의 상황에서 적용되는 풍부한 유추와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1983년 옥수수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생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은 이렇게 말했다. “옥수수 염색체를 연구하는 동안 저는 옥수수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옥수수와 한 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는 종종 저 자신의 존재를 잊기까지 했지요…….”

 

셋째 낯설지만 분명한, 새로운 연결. 아인슈타인은 자연의 법칙에 이르게 하는 논리적인 길은 없으며 다만 직관에 의해서만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직관은 우리 뇌의 무의식 레벨의 수많은 단계를 동시에 관통하면서 의식 레벨로 순식간에 튀어 오른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에는 미래 사회를 쉽게 설명하고 어떠한 주요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 지를 풍부한 사례로 설명했다. 수많은 4차 산업혁명 책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04.05 16:37 분류없음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id=303878&Page=&Board=news

 

열대초원 누비던 잡식성 거대늘보, 멸종 이유는?

8차선 도로를 2박 3일 동안 건너는 동물이 있다. 거친 야생에 살지만 하루 15∼18시간 잠을 자며 나태를 부리기도 한다. 하도 움직이지 않은 통에 회갈색 털은 초록 이끼까지 끼었다. 주인공은 나무늘보다.  나무늘보는 두발가락과 세발가락 나무늘보로 나뉘...

www.ibric.org

 

8차선 도로를 2박 3일 동안 건너는 동물이 있다. 거친 야생에 살지만 하루 15∼18시간 잠을 자며 나태를 부리기도 한다. 하도 움직이지 않은 통에 회갈색 털은 초록 이끼까지 끼었다. 주인공은 나무늘보다. 

나무늘보는 두발가락과 세발가락 나무늘보로 나뉘는데 오늘날 멸종 위기 종으로 분류돼 있다. 짝짓기에 필요한 단 5초의 시간마저 귀찮아 평생 홀로 사는 놈들이 있을 정도니 미래가 너무 걱정된다. 나무늘보는 11개월 동안 임신을 하며 발톱과 이빨, 털이 다 자란 상태로 새끼를 낳는다. 나무늘보 특성상 새끼를 덜 성숙하게 낳을 경우 다른 동물의 공격을 받거나 키우는 데 힘이 부치기 때문일 것이리라. 

이 느린 동물들은 좀처럼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배변 활동은 일주일에 한 번이며, 먹은 먹이는 한 달 이상 소화시킨다. 그마저도 위 속의 박테리아의 도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적게 먹으니 거의 움직이지 않고 그래서 체열도 거의 없어 더운 지역에 살지만 털이 수북하다. 이들 나무늘보의 무게는 6㎏이 넘지 않고 종 다양성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화석 기록에 나타난 고대 나무늘보는 8개 과에 걸쳐 50종 이상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중 절반이 1,000㎏ 이상으로 거대했다. 

 

영화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나무늘보. 나무늘보는 언제나 느림보의 대명사로 희화화 돼 왔다. 하지만 나무늘보가 진화하고 생존해온 역사를 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디즈니

목이 말랐던 거대 나무늘보의 죽음

남아메리카를 방문한 찰스 다윈은 바닷가 주변을 걷다가 암석 사이에서 거대 뼈를 발견했다. 그것들은 12,000년 전 플라이스토세에 아메리카 대륙에 있다가 멸종된 거대동물들의 것이었다. 다윈은『종의 기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라플라타에서 극히 먼 빙하시대부터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패류와 공존했던 메가테리움, 톡소돈(코뿔소의 몸과 하마의 머리 그리고 설치류 같은 이빨이 있었다.)과 같은 대형동물의 유해와 함께 매몰된 말의 이빨을 발견했다.” 

메가테리움(Megatherium americanum)은 코끼리만큼 컸고 무게는 4t까지 크며 몸길이는 6m에 달했다. 에레모테리움(Eremotherium eomigrans)은 발톱 길이가 33cm 고 무게는 5t에 달했다. 특히 메가테리움은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에 등장하기도 한 고대 동물이다. 메가테리움의 첫 번째 화석 표본은 1788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됐다. 이후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가이아나,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를 포함한 남미 전역에서 발견됐다. 메가테리움은 지금껏 존재한 가장 큰 육지 포유동물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동물은 초식성으로 알려졌으며 멀리 떨어진 나뭇가지를 끌어당기기 위한 거대하고 굽은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개미핥기처럼 손등을 사용해 네 발로 걸었지만 두 다리로 걸을 수도 있었다.

지난 2월 27,000년 전의 거대 나무늘보 화석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렸다. 2014년 경 자연 풀(natural pool)에서 고대 마야 유물을 찾고 있던 잠수부가 나무늘보의 것으로 보이는 위팔뼈와 넙다리뼈 그리고 10cm에 달하는 치아의 일부를 발견한 이후였다. 이 지역은 25개의 호수와 세노테(cenote, 일명 돌리네. 카르스트 지역에서 발견되는 구멍) 또는 자연적인 씽크홀들이 있는 시스템이었다. 뼈가 발견된 웅덩이는 과거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을 담고 있는 곳’이라 믿어졌던 장소였다. 

연구원들은 치아 화석을 음극선 발광 현미경으로 살폈고 곧은관상아질(orthodentin) 조직을 얻었다. 그리고는 이 조밀한 유형의 치아 조직 샘플을 긁어 연구한 끝에 거대 나무늘보의 식단과 기후의 월별 및 계절별 변화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이 거대 나무늘보(Eremotherium laurillardi)가 살았던 시기 벨리즈는 오늘날과 같은 정글이 아닌 건조하고 척박한 지역이었다. 키가 13피트에 달하는 이 거대 땅나무늘보는 물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던 중 깊은 구덩이 속의 물을 보고는 안도를 했겠지만 다시는 오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약 27,000년 전에 살았던 이 생물체를 “목마름”이라고 묘사했다. 왜냐하면 마지막 최대 빙하기(LGM, Last Glacial maximum. 이 시기 동안 해수면은 현재 대비 평균 약 130m 낮았다고 한다.) 때 지구의 물 대부분이 빙하와 극지방 얼음 덩어리에 갇혀버린 후 한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이어나가던 과학자들은 이들 거대 포유동물들이 왜 멸종했는지 추가로 조사했다. 그리고 이 거대 나무늘보가 죽기 바로 지난 해 동안 무엇을 먹었으며, 그 시기 환경과 그 지역 기후에 대한 단서도 얻었다.

 

거대나무늘보의 치아 화석을 통해 그 당시 무엇을 먹었는가, 어떻게 생존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나무늘보 화석이 보이는 과거 지구의 모습

거대 나무늘보는 약 7개월간 지속된 긴 건기(짧은 두 우기 사이에 겹쳐 있었다.)를 거쳤고, 숲이 아닌 사바나 같은 열대초원에서 살았다. 연구의 저자이자 일리노이 대학교 어버너 샴페인 캠퍼스의 인류학 교수 리사 루세로(Lisa Lucero)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이 나무늘보가 건기와 우기 동안 다양한 식단을 가졌다는 생각을 지지한다. 이로 인해 거대 나무늘보들은 널리 퍼졌고 오래 살아남았다. 꽤나 적응력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식단은 주로 소화 효율이 낮은 이파리나 과일처럼 대체로 부드러운 재료였다. 개개의 서식지에 따라 식단이 조금씩 달랐는데 열린 서식지에서는 방목자로 그리고 밀폐된 서식지에서는 잡식을 하였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이 거대 나무늘보가 브라질 남부에서부터 북미 대서양 연안과 걸프에까지 분포했다는 점이었다. 벨리즈에서 발견된 고대 멸종 나무늘보의 이빨은 이처럼 거대 나무늘보의 지난 1년을 연구원들에게 들려주었다. 치아 화석으로 남겨진 한 생물의 죽음이 지구의 역사를 증명하며 보이고 있었다. 

북아메리카의 시간을 2만 년 전으로 되돌린다면 거대 나무늘보 주변으로 낙타, 털매머드, 콜롬비아매머드, 마스토돈, 곰포테르, 재규어, 퓨마, 아메리카사자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533만 3천 년 전의 초기 플라이오세부터 살아오던 이 동물은 슬프게도 약 BC 8,500년에 멸종하였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많은 요인들이 아메리카 거대동물의 멸종을 야기했으리라 연구원들은 추정했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질문의 범위를 넓혀 생각했다. 그렇게 많고 큰 동물들이 왜 플라이스토세 후반에 왜 사라졌는가. 

 

나무늘보가 현재 모습으로 진화해 온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거대나무늘보의 멸종은 인류의 미래를 돌아보게 한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거대 포유동물의 멸종으로 읽는 미래

지구 역사에서 종의 진화와 멸종은 지속돼 왔다. 지난 5억 4천만 년 동안 최소한 다섯 차례의 대량멸종 사건이 있었다. 거대 나무늘보의 멸종은 마지막 최대빙하기 이후 몸집이 큰 육상동물 대부분이 사라진 가장 최근 멸종에 속했다. 과학자들은 이 다섯 번째 멸종을 두고 여러 가설을 제시했다. 기후가 서늘해지면서 삼림지대가 초지나 나지로 변하기 시작하자 초본(草本)에 실리카 함량이 높아졌고, 이 모래와 같은 질감으로 인해 동물들의 이빨이 빨리 닳아 없어지며 먹이 섭취에 곤란함을 느꼈다. 결국 기후 변화에 따른 식생의 부족과 변화로 거대 초식동물들은 살아남지 못했고 덩달아 거대 포식동물도 죽어 얼어붙은 상태로 오늘날 발견되기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한편, 현생 인류의 출현 때문에 멸종했다는 설이 있다. 대형 포유동물들이 그간 수차례의 간빙기와 대방하기에서 살아남았기에 단순히 최대빙하기만으로 멸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생 인류는 약 40,000 년 전쯤 유럽으로 이동해 대형 동물을 먹잇감으로 삼으며 살다가 12,000년 전~13,000년 전에 거대 나무늘보가 사는 지역에 들어왔다. 동굴에 새겨진 벽화를 보더라도 현생 인류가 거대 포유동물들과 같은 시기에 살았다는 단서들이 꽤나 있다. 

인간의 확산 때문인지, 질병 때문인지, 극적인 기후변화 때문인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떠한 선택압력이 거대 동물들에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마지막 빙기가 끝날 무렵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서 10그룹 이하가, 남아메리카에서 최소 50그룹이 사라지면서 지구 상 65%의 대형 포유류가 죽었다. 오늘날 남겨진 동물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들소, 아르마딜로, 퓨마, 재규어 등이다. 

고대 생물의 화석을 연구하는 건 우리의 과거를 보는 것 이상으로 미래를 보게 한다. 생물의 멸종과 진화를 눈여겨보자면, 오늘날 동물들은 ‘인간’이라는 환경 요건을 진화의 DNA에 넣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인위적 서식지 손실과 기후 변화, 환경 파괴로 인해 현재 살고 있는 거대 나무늘보의 후손들은 새로운 위협에 따른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오늘날 나무늘보들이 빛바랜 양피지마냥 아직도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인간으로 하여금 지난 대멸종을 토대로 미래를 올바로 읽어보라며 자신들을 내비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고문헌 및 사이트>

1.『환경고고학』(키스 윌킨스, 크리스 스티븐스 저, 안승모, 안덕임 역, 학연문화사, 2007.)
2.『완벽한 빙하시대』(브라이언 페이건 저, 이승호, 김맹기 외 1명 역, 푸른길, 2011.)
3.『선사시대』(더글라스 파머 저, 이주혜 역, 21세기북스, 2011.)
4. https://www.thesun.co.uk/tech/8525145/giant-sloth-sinkhole-belize-tooth/
5.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9/02/190227142733.htm
6. https://edition.cnn.com/2019/02/27/world/giant-ground-sloth-fossil/index.html?no-st=1553823380
7. http://advances.sciencemag.org/content/5/2/eaau1200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04.03 21:50 분류없음

행운의 답장을 얻으려면 간절한 ‘콜드콜’이 실마리

[서평] 『콜드콜 (행문의 문을 여는 열쇠)』(이계준, 더미디어그룹, 2018.10.26)

 

‘혈혈단신(孑孑單身)’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집약해준다. 저자 이계준 씨는 건축학도에서 시작해 미국 뉴욕의 부동산 컨설팅 회사 아시아 담당 대표까지 올랐다. 병역 특례를 할 때도, 현재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도 그는 ‘콜드콜’을 멈추지 않았다.

 

콜드콜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콜드콜이란 모르는 사람에게 상품 등의 구매를 권유하기 위해 약속을 잡지 않은 채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행위로서 세일즈(sales)의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다.” 사실 영업을 하거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직접 연락하고 이력서를 보내고 기획서를 보내는 일은 맨 땅에 헤딩을 하는 것과 같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락을 취하다보면 언젠가 모두 만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처음 콜드콜을 할 때와 마지막으로 콜드콜을 할 때의 자신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고 강조했다. 처음 연락을 했던 이들과는 나중에 다시 만나기도 했다. 초반에 좋은 인연으로 만났던 사람들이 악연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특히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 경우에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묵묵히 모든 과정을 이겨내니 지금의 이계준 씨가 탄생했다.

 

이계준 씨는 유학을 준비하고, 영어 번역 알바 등을 하면 꾸준히 어학 공부를 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간 것이다. 그 결과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MBA를 딸 수도 있었다. 대학원 시절에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미팅을 잡았다.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작은 성공이 결국 큰 성공을 이뤄냈다.

 

 

작은 성공이 큰 성공으로 거듭나기까지

 

책에는 일본 건축학도 안도 다다오의 얘기가 나온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림자’를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기를 가져라. 사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이 말들에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담겨 있는 셈이다.

 

당장 어둠에 있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행복은 빛이 아니라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밝혔다. 몰입하며 충실히 살다보면 그 빛이 내가 다가온다.

 

저자는 일자리를 얻고 병역 특례를 알아보기 위해 130여 개 건설사 인사 담당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하고 방문하고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저자 이계준 씨의 첫 번째 콜드콜이었다. 쑥스러워서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갖고 움직였던 셈이다.

 

책 속에는 영화 ‘글렌 개리 글렌 고스’의 한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선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직원들을 벼랑으로 내몬다.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절실함을 가져온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실 회피의 심리 때문에 더 부지런히, 간절히 움직인 것이다.

 

유학에 대한 동경과 성공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 버둥거리는 수많은 사람들. 당장 자신의 이력서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보라. 그러다보면 언젠가 행운의 회답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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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2:03 분류없음

토론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 교육의 본질

[서평] 『파랑새를 만난 한국인』(문미선 저, 북산, 2019. 02.25)

 

나를 알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남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파랑새를 만난 한국인』은 독자로 하여금 서양문화를 깊이 이해하도록 도운 뒤 우리나라의 상황을 다시 살펴보게 한다.

 

대한민국에는 지극히 이질적인 경험을 가진 세대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다. 1020세대는 해남의 땅 끝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어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발전시키는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7080세대는 그 엄청났던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5060세대는 서양지식을 본격적으로 학습하여 산업을 일으킨 주역들이다. 3040세대는 훨씬 자유로워진 해외여행 덕분에 직접 외국을 체험하며 우리의 지평을 넓혀왔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 세대 다양성이야말로 우리만의 독특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에너지이자 원동력이라 주장한다. 일본 그리고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구촌에서 늦게 등장했다. 문물 도입의 측면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포기 말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21세기를 지배하는 3가지 핵심 어휘

세계적으로 21세기를 지배하는 핵심 어휘가 있다. 저자는 ‘알고리즘’, ‘리버럴아츠’, ‘큐비트’를 가장 중요한 3종 세트로 꼽았다. 알고리즘이란 단순히 셈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셈을 하는 방식이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알고리즘이라 한다면 레시피를 들 수 있다. 실제 레시피에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혼란을 일으킬 자연언어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예로 센 불과 중불, 먹기 좋게 썰다, 은근히 오래 끓이기 등이다.

 

하지만 기계 알고리즘은 이러한 레시피를 그 손맛까지도 잡으려고 더욱 완벽을 향해 달려야 한다. 아마도 미래 세대는 미역국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 할머니나 어머니가 아닌 구글에게 물을 것이 분명하다. 기계 세계에 맞춰 인간도 변하는 것이다.

 

리버럴아츠는 2007년 스티브 잡스로부터 소개되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얇고 작은 스마트폰을 무대에 들고 나왔다. 폰의 검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자 화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를 보고 세계인은 탄식을 쏟아냈다. 이후 잡스는 한 장의 슬라이드를 보였다. “스마트폰은 기술과 리버럴아츠의 교차로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사실 리버럴아츠에 상응하는 우리말은 없다. 이 단어의 기원이 그리스-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갖추고 자유롭게 토론하기 위해 공부하였던 교과과정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3개의 기초과목(문법, 논리학, 수사학)과 4개의 심화과목(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이 있다. 기초과목들은 언어와 관련이 있다. 토론을 위해 라틴어의 구조와 규칙에 대해 파악하는 문법,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논리학,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인 수사학.

 

심화과목들은 바깥세상인 자연과 관련이 있다. 복잡한 셈을 할 수 있는 산술, 문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기하학, 소리를 화성구조로 만들어내는 음악, 우주에서 문제해결의 모형을 찾으려는 천문학. 따라서 리버럴아츠는 학문 분야가 세분화하기 이전에 자연 안에서 인간의 본질을 공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잡스는 기계를 다룰 때 마치 살아 숨 쉬는 인간을 대하듯이 하였다. 여러 개의 줄들로 뒤엉켜 있는 컴퓨터 뒷면 내부까지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실핏줄로 정의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서양 교육을 보며 우리나라를 깨우치다

큐비트는 양자 컴퓨터로 계산할 때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큐비트 세상의 가장 큰 특징은 확률이다. 상보성도 확률과 관계가 있다. 예로 빛을 입자에 대해 측정하면 자동적으로 빛은 파동에 대한 정보를 잃는다. 반대로 빛의 파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면 빛의 입자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정보가 증가한다. 따라서 우리는 빛의 입자와 파동에 대해 동시에 알 수가 없다. 확률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데 이것을 물리학 용어로 빛의 입자와 파동의 상보성이라고 한다.

 

저자는 21세기에 꼭 다시 논의해야 할 분야로 나는 교육과 영어를 선택하였다. 교육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지구촌 문제다. 공부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습득은 지식을 자연스럽게 흡수하여 나를 드러내는 시기이다. 둘째 학습은 지식을 이해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시기이다. 셋째 탐구는 지식을 비판적으로 선별해 정리해 나아가는 시기이다. 넷째 연구는 나의 모든 감각인 공감각을 동원해 나의 것을 만들어내는 시기이다.

 

책에는 저자가 독일에서 공부하던 순간들이 흥미로운 지구촌 사례로서 들어가 있었다. 서양의 토론은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나, 서양인들은 전체를 확인한 후에 이를 부분으로, 개체로, 소분자로 잘게 쪼게며 사고를 한다는 점들이 그렇다. 이렇듯 개체에 집중하는 서양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점점 더 개인적인 자율성을 갖게 된다. 어릴 때부터 집 안에서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이 주장이 설득력이 없거나 반박을 당하였을 때에도 서양아이들은 이를 방어하는 토론에 익숙하게 된다.

 

한때 저자는 박사과정 중에 논문작성의 자격 여부를 검증하는 시험을 보았다. 응시자는 주제를 받은 날부터 정확히 14일째 되는 날 오후 5시까지 완성한 소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14일 만에 시험결과를 만들면서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기에 저자는 난처해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저자의 우편함에 쪽지를 넣었다. 수업을 대신해 주겠다거나, 주제에 맞는 문헌을 추천하고, 비슷한 주제를 다룬 논문을 알려주며 도움을 주었다. 실은 이 ‘14일의 프로젝트’는 평정을 유지하며 공동체의 연대감 속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는가에 대한 평가점수가 더 중요했었다. 내면적으로 극한까지 내몰리는 상황에서 공동체와 진정으로 깊이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시험인 것이었다.

이외 저자는 자신의 멘토가 되어주신 교수님의 대화방식을 익히고, 글쓰기 딜레마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구촌과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자질로 예술가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창의력 이전에 상상력이, 상상력 이전에 관찰력이 중요하다. 관찰력은 눈앞에 놓인 것을 단순히 엄청난 집중력으로 바라만 볼 뿐 아니라 그 이면까지도 바라보게 한다. 인간과는 말할 것도 없고, 개와 고양이, 화초와도 나눌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한 것이다.

 

『파랑새를 만난 한국인』의 저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을 흡수하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나를 중심에 두고 나의 프로젝트를 실현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한국인이 행운의 파랑새를 만나기 위한 방법을 저자는 서양의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적었다. 세계화 시대의 배움과 교육을 고민하는 독자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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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10:12 분류없음


유아들은 생후 18개월부터 4세까지 모방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기들은 부모의 표정을 따라 해야 보살핌을 받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모방은 사회성의 토대로서 조화와 결집을 위한 행위다. 지난해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 한 팀은 침팬지를 따라 하는 사람을 관찰한 바 있다. 이그노벨상은 하버드대 유머과학잡지에서 기발하거나 괴짜 연구를 한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인간의 행동 중 10% 정도는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침팬지를 모방했다. 물론 침팬지 역시 인간을 따라 했고,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가장 구체적인 행동은 하품이었다. 적의가 아니라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모방이다.


최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공개된 연구에 따르면 말레이곰 역시 동료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따라 할 줄 안다. 말레이곰이 다른 말레이곰의 얼굴 표정을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따라 하는 건 처음 알려졌다. 연구진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중간에 공백기를 좀 두고 총 2년간 말레이곰을 연구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서 은둔하는 곰이라 정평이 나 있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한다는 건 눈치가 빨라야 하는, 매우 미묘한 소통 과정이다. 인간과 고릴라 외에 얼굴 표정의 정확한 모방이 관찰된 건 흔치 않다. 고릴라가 정확히 상대 고릴라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할 줄 안다는 연구 결과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말레이곰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말레이곰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곰으로 잡식성이다. 특히 말레이곰은 각자의 생활반경이 20% 정도까지 중복됨에도 불구하고 교미 시즌 외에는 다른 어른 곰들과 교류가 거의 없다. 꿀을 좋아하고 동작이 느려 ‘꿀곰’ 혹은 ‘느림보곰’으로도 불리는 말레이곰은 120∼150cm의 키에 몸무게는 80kg까지 나간다. 말레이곰은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며,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돼 있다. 말레이곰 숫자는 산림 벌채와 밀렵, 농작물 보호를 위한 사살 등으로 줄고 있다. 어미곰이 죽는 경우, 새끼곰들은 중국에서 몇몇 의약품 용도를 위해 ‘담즙 곰’으로 사육된다. 말레이곰 어미들은 대개 2마리의 새끼를 돌본다. 어린 말레이곰들은 어미곰 곁에서 3개월 정도 보살핌을 받는다.

연구진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놀이 세션에서 22마리(15마리는 암컷) 말레이곰의 얼굴 표정들을 코드화했다. 2∼12세의 말레이곰들은 말레이시아의 한 보호센터에서 지냈다. 이곳은 야생과 비슷할 정도로 커서 곰들이 상호작용을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에서 10초 정도 진행되는 372번의 교감놀이에 참여했다. 거친 놀이보단 몸으로 밀치고, 뒤에서 물거나 잡으면서 토닥거리고 도망가는 등 온화한 놀이 세션에 2배 이상 더 많이 참여했다. 이 온순한 놀이에서 곰들은 명확히 얼굴 표정 따라 하기를 보여주었다. 교감놀이에서 연구진은 분명하게 구별되는, 1초 동안 위쪽 앞니를 드러내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류했다. 관찰 결과, 말레이곰은 명백히 구별되는 두 가지 방식의 입 벌리기를 총 931회 보여주었다. 

얼굴 표정을 모방하며 학습하고 소통한다고 해서 종의 우월성이 입증되는 건 아니다. 말레이곰 역시 미묘하지만 정확하게 대면 소통을 할 수 있다. 그 비율은 약 30%에서 100% 사이였다. 물론 반응이 없는 녀석도 있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서 고립돼 살아가지만 놀랍도록 장난꾸러기다. 놀이를 하는 도중 적절한 교감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때론 싸움으로 변질된다. 

복잡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춘 집단의 종들만이 그만큼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갖는다고 간주돼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보면 고립된 생활을 하는, 즉 단순한 사회적 시스템의 동물들 역시 정교한 소통 방식을 갖는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말레이곰은 상대방의 관심을 받을 경우 입을 벌리는 경향을 보였다. 입을 벌리는 행위는 호감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요컨대 복잡한 얼굴 표현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포유류에서 흔한 기질일 수 있다. 인간이 모를 뿐이다. 

영장류나 개들은 서로를 모방하면서 생존법을 배운다. 미묘한 모방하기는 두 마리의 말레이곰이 서로 더 격한 놀이를 하거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신호를 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 역시 타인의 얼굴 표정을 정확하게 따라 하고, 이런 모방으로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런데 종종 타인의 시선과 표정은 화살이 돼 날아오기도 한다. 경멸과 비난의 표정은 그 얼굴을 바라보는 상대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결국 얼굴 표정의 신호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방의 유대로, 혹은 고통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3206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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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16:52 분류없음

‘사고력 + 자립력 + 연합력’이 창의 인재 키운다

[서평] 『미래 인재로 키우는 미국식 자녀교육법 전 세계 교육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미래인재육성 프로젝트』(김종달, 책들의정원, 2019.03.05.)

 

우리의 교육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 인공지능 및 컴퓨터의 확산에 따른 교육의 무용론이다. 둘째, 공교육의 제자리걸음이다. 셋째, 사교육의 횡행이다. 물론 각 부분마다 적절한 역할을 할 수도 있으나 현재 각 축은 삐거덕 거리고 있다. 그래서 저자 김종달 씨는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교육을 찾아 책을 썼다. 사교육에도 휩쓸리지 않고, 공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는 교육 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 세 가지는 ▲ 사고력 ▲ 자립력 ▲ 연합력 ▲ 메타인지이다. 이는 세계 각국 및 교육 관련 기구에서 강조하는 여러 교육 지표들과도 일맥상통한다고 김종달 씨는 말한다. ‘나’는 자립력, ‘사회’는 연합력, ‘사회와 나를 잇는 도구’는 사고력으로 표현했다.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성찰성은 메타인지로 인식 가능하다.

 

사고력 + 자립력 + 연합력 그리고 메타인지

 

현 시대에서 강조되고 있는 ‘창의성’만 하더라도, 독창성과 유용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독창성은 김종달 씨에 따르면, 자립력에 가깝다. 왜냐하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유용성은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는 연합력과 욕구를 해결하는 사고력의 공통분모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창의성은 창의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창의성 앞에 우선시 되는 건 바로 문제 해결능력이다. 문제 해결 역량이 없으면 창의성 역시 무용지물이다. 머리로만 나올 수 없는 게 바로 창의성이다. 저자는 창의성이 자립력과 연합력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강조했다.

 

창의성에서만 사고력, 자립력, 연합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협업’과 ‘협상’에서도 이 세 가지는 요구된다. 책에선 “자신을 파악하는 자립력과 타인을 존중하는 연합력,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사고력 모두 필요하다”고 적었다. 물론 이런 역량들이 별개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엄마의 정보력과 집안의 재력이 교육이라고 했던 흥행 공식이 깨졌다는 지점이었다. 부모 세대들은 어떻게든 좋은 학원과 성적이면 명문대를 입학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카이스트나 컬럼비아대학의 조사를 보면, 일반고 학생들이 과학고, 영재고 학생들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실력이 향상되었고 한국인들은 유난히 졸업률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회복 탄력성이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교육은 멀리 봐야 한다.

 

올리버 웬델 홈지는 “지적 교육의 주요한 부분은 사실의 습득이 아니라 습득한 것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머릿속에만 넣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저자 김종달 씨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 세대의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에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고 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자신을 반기는 아이들 때문에 살아가는 힘이 난다. 그 아이들을 위해 이제라도 우리의 교육은 바뀔 필요가 있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03.23 22:58 분류없음

배신의 충격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순간에 다가온다. 명분이 뒤집히는 것만큼 배신의 골을 깊게 하는 것은 없다. 과학자들이 과학적이지 못하거나, 인문학자들이 전혀 인문적이지 않은 사고나 행동을 보인다면 학문의 본질은 왜곡된다. 환경 단체, 그것도 동물들의 권리를 주창하는 곳에서 동물들의 안락사를 시행했다면 배신의 파장은 곱절이 된다. 

동물권 단체 케어에서 내부고발은 그 자체가 충격이다. 케어의 박소연 대표에 대한 진실공방은 법적 잣대에 의해 어떤 결말이 나든 치유될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다. 박 대표가 말하는 ‘인도적 안락사’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 할까? 안락사 여부는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안락사가 동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동물을 보호해달라고 기부한 돈이 동물 안락사에 사용된다면 그 배신감은 곱절이 된다. 유기 동물과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은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케어 박소연 대표는 2015년 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구조한 동물 중 적어도 230마리를 안락사 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의 행위가 대량 살처분과 다른 인도적 안락사이며 병들고 양육이 어려운 동물들만 대상으로 안락사 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어는 절대 안락사를 하지 않는 보호소라는 명패를 달고 있어 파문이 더욱 컸다. 심지어 어리고 건강한 구조 동물들을 단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안락사 했다. 이를 숨긴 채 모금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온 국민은 분노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동물의 복지를 고려해 안락사 한 것이냐는 점이다. 과연 무엇이 ‘인도적’인가? 케어는 구조에만 열을 올리고 사후 보호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충분히 살 의지와 생명력이 넘치는 유기동물 그리고 구조 동물들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안락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을 죽여야 하는지와 같은 기준도 모호했다. 사람들은 유기동물들이 보호받고 동물권리가 확산되기를 바라며 안락사 없는 보호소 케어를 후원해왔다. 우리사회 유기 행위가 줄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케어 사건은 안락사 보다는 위선과 거짓말로 후원자와 국민을 기만했다는 점이 문제다.

 

동물권 보호를 주창하는 단체 '케어'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케어의 불가피한 이유로 인도적 안락사를 시행했다. 사진 = 케어 홈페이지 소개

 

안락사라기보단 위선과 거짓말의 향연

“더는 이 동물을 돌보기가 힘들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이 말에는 반려동물의 끔찍한 다음 운명이 예고되어 있다.  

동물에게도 죽음은 삶만큼이나 중요하다. 생태계 내에서 동물들은 죽음을 이해한다. 2010년 스털링대학교 연구원은 침팬지 소집단을 연구하던 중 기이한 행위를 목격했다. 한 마리가 죽어가던 순간 나머지 침팬지들이 몸단장을 시키더니 완전 죽었을 때는 갑자기 수컷 한 마리가 높은 곳으로 올라 펄쩍펄쩍 뛰어 다녔다. 그리고 양손을 모아 죽은 침팬지의 몸통을 두드려 댔다. 입을 들여다보거나 팔다리를 들어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침팬지들도 있었다. 침팬지들은 밤새 서성대며 모두 잠을 설쳤다. 회색기러기는 짝을 잃었을 경우 눈이 움푹 가라앉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의기소침해한다. 노랑부리까치는 동료가 죽었을 때 사체를 살짝 쪼아 확인을 하고 이후 풀을 조금 가져와 옆에 두어 묵념 후 날아간다. 

죽음은 그 자체로 삶이 중단되는 일임과 동시에 삶의 기억이다. 어느 생물이건 이유 없이 또 잔인하게 죽고 싶지 않다. 동물들의 죽음 역시 동료에게 삶의 기억으로 남는다. 

 

10마리의 개가 가스로 안락사 된 장면. 사진 = https://indyweek.com/news/northcarolina/animal-euthanasia-rules-languish-language
 

인간의 손에 죽음이 통제된 반려동물들

안락사는 점잖고 수월한 죽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얼핏 고통 받는 동물을 해방시켜주는 행위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하지만 동시에 폭넓은 살해 행위를 품은 불완전함도 담겨 있다. 집이나 안락사 센터처럼 스트레스를 덜 받는 장소에서 주인과 마지막을 함께하거나 안락사 되는 동물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물의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안락사의 동기 자체에 구분을 두지 않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이유 없는 잔인한 안락사가 곳곳에서 자행된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하는 동물은 없다. 반려동물들은 죽음을 선택할 능력이 없기에 이 경우 비자발적 안락사를 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하는데 개를 데려갈 수 없다거나, 아이를 낳아 고양이를 돌보기 힘들다는 등 편의에 따라 주인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수의사에게 데리고 가 안락사를 부탁한다. 만약 수의사들이 거부할 경우 버리거나 보호소로 넘긴다. 보호소에 넘겨진 동물들은 얼마간 연장된 목숨을 쥔 채로 새 주인을 기다린다. 하지만 새 보금자리를 얻지 못 할 경우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유기견은 거의 10만 마리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에 발생한 유기동물 수는 77,877마리로 이중 30.9%가 안락사, 15.9%는 자연사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버려지는 순간 죽게 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발표를 보면, 2017년도엔 10만2593마리의 유기·유실동물이 구조됐다. 이 중 안락사 되는 비율은 20.2%로 늘어나는 추세다. 제 주인에게 돌아가거나 분양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영국에서만 해도 여름 휴가철이면 반려동물을 버리고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반려동물 천국이라는 미국과 반려동물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랑스 역시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하다.
 

인간의 안락사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안락사 역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고통을 줄여준다고 할 때, 과연 그 고통이 무엇인지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사진 = https://www.petmd.com/blogs/dailyvet/2010/february/cost_euthanasia-5520 


은밀한 사업이 된 동물 안락사

재산이 아닌 생명이 되어야 하는 약자들

지금껏 전 세계 수많은 보호소와 쉼터에서 동물들은 이유도 모른 채 콘크리트 오븐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산화탄소를 마시며 죽었다. 미국 일리노이 주와 미시간 주, 노스캐롤라이나 주, 텍사스 주는 안락사를 위해 가스실을 아직도 사용한다. 가스실에서 동물이 죽기까지는 길게 30분 이상 걸린다. 수의사가 안락사를 집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재 우리 법률은 동물을 재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유 권리를 인간이 쥐고 있는 것이다. 동물에게서 생명과 자유를 빼앗는 일이 법률 속에 뿌리 깊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법이 정당한지 입증해보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  

법제화 된 안락사는 케어 사건처럼 개인에게 아주 위험한 무기를 쥐어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시인 겸 극작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인간은 죽음을 뼛속까지 안다. 인간이 죽음을 창조했으므로.”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작은 권력이라도 갖는 순간 자신 외의 다른 이의 불행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이익만 된다면 칼을 들 정도다. 

모든 안락사는 ‘동물에게 최선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평생 철창과 개집에서 살거나, 거리를 떠돌거나, 굶주리고 추위에 떨거나, 사고와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안락사 당하는 것이 과연 더 나은 건지를 말이다. 안락사가 동물의 입장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일까? 고통 받는 생명들을 위한 자비로운 행동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물 안락사는 동물들을 손쉽게 처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행위일 뿐이다. 

동물은 자신들의 대변자를 원한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동물에 대한 법제도가 다시금 정립돼야 할 때다.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고 버려진 동물을 공동체가 함께 보살피겠다는 방향으로 말이다.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id=303435&Page=&Board=news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03.19 15:03 분류없음

너무 힘들 때 걷고, 또 걷자! 그러면 낫는다!

[서평]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마음의 병을 앓은 정신과 의사가 힘든 인생들을 위해 쓴 치유 관계학)』(나쓰카리 이쿠코 지음, 홍성민 옮김, 공명, 2019.02.25.)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아온 정신과 의사가 있다. 바로 나쓰카리 이쿠코이다. 스스로 자해를 했고, 죽기 위해 몸부림쳤던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는 집에서 어머니의 이상 행동을 평생 동안 보아왔다. 어떻게 하면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답은 본인이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책 제목이 시사 하는 바는 크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이쿠코는 아버지를 포함해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극복해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이었다. 때론 큰 돈을 지불해야 했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무수히 많은 죽음을 목도한 끝에.

 

의대생이던 저자는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호스피스 병동을 들르며 자신도 이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가까스로 느낀 것이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자는 정작 본인이 죽고 싶었는데, 죽음을 봐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미안해했다. 무거운 마음을 갖고 말이다. 사람의 버팀목이 결국 사람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한 의대 교수로부터 들었다던 말들을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죽을 사람, 나는 살 사람...이, 아니라 나도 언젠가 죽을 사람”, “‘당신은 환자, 나는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환자 가족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환자였던 셈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죽음을 원했던 정신과 의사, 죽음을 말하다

 

죽음을 그토록 원했지만 죽음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속 시원하지도 않았다. 죽음은 가까운 사람이 영원히 다른 세계로 떠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그녀가 상상했던 죽음이란 죽음 이하도, 죽음 이상도 아니었다.

 

그녀는 힘들 때면 자주 걸었다. 걷다보면 좋은 생각이 든다. 힘들 땐 정말 걸어보자. 저자의 말마따나 회복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걷는다는 건 시간을 번다는 뜻이다. 하루를 견뎌내는 강함이 중요하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다보면 그게 인생이 된다.

 

의존증 환자들이 많다. 그들은 외롭고 자신감이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의존증 환자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상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하다. 놀랍다.

 

이쿠코는 불행에도 샛길이 있다고 강조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행동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한 발자국 내디뎌본다.” 에필로그에서 그녀가 던진 외침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03.15 16:55 분류없음



전 세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 홍역 때문에 하루에 약 300명이 사망하고 있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홍역 환자가 발생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또 유럽과 미국에선 유아들이 유난히 많이 홍역에 걸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60명 이상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해외 유입인 것으로 추정된다. 

홍역은 몇몇 국가에서 영영 사라진 질병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일부 부모는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다. 집단의 면역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백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말, 홍역(Measles)과 볼거리(Mumps), 풍진(Rubella)을 뜻하는 이른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이 과학 학술지 ‘랜싯’에 실렸다. 당시 태어났던 유아들은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부모들에 의해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못했다. 과학에 대한 불신 혹은 배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전 세계 10대 보건 위협 중 하나로 백신 기피 현상을 꼽았다. 

16일은 홍역 백신의 날이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홍역은 특히 면역체계가 약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어린이들을 사망이나 장애에 이르게 한다. MMR 백신은 안전하고, 접종자의 90∼95%가 효과를 본다.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않으면 90%가량이 홍역에 걸릴 수 있으며 폐렴, 설사, 중이염 등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때 홍역을 앓았다. 그때 정말 좋아했던 짜장면을 먹어도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 

2017년 11만1000명이 홍역 때문에 사망했다. 대부분 5세 이하 어린이였다. 홍역 백신은 2000년과 2017년 전 세계 2210만 명의 아이를 죽음에서 구했다. 홍역의 첫 증상은 대개 고열이다. 홍역에 감염되면 10∼12일 새 눈이 붉어지고 발진이 생긴다. 홍역의 한자 ‘紅疫’은 좁쌀 같은 붉은 종기들이 생기는 전염병을 뜻한다. 홍역의 영어 단어는 고름, 물집을 뜻하는 중세 독일어 ‘masel’에서 파생됐다. 홍역은 주로 기침과 재채기 및 감염 부위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발생한다. 

WHO는 2018년 전 세계적으로 홍역이 증가한 이유 중 30% 정도는 백신 기피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역은 집단 면역의 적정선이 무너지면 금세 확산 가능한 질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MMR 백신의 두 차례 무료 접종을 실시했다. 몸의 면역체계는 홍역 바이러스를 영원히 기억한다. 

‘백신(vaccine)’이란 말은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1749∼1823)로부터 유래했다. 그는 소의 발진성 피부질환인 우두(牛痘) 농포에서 고름을 짜 소년의 팔에 직접 주입하는 실험을 하며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천연두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인류를 절멸의 벼랑으로 몰았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런데 지금 백신에 대한 기피가 있듯 당시에도 우두접종법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제너의 방법은 입증되며 결국 많은 사람을 살렸다. 면역학의 아버지였던 제너는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백신이란 말을 고안해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난해 여름 로타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한 4개월 된 아이가 장이 말려들어가는 장중첩증과 장이 막히는 장폐색을 일으켰다며 백신 거부 운동의 확산에 대해 서술했다. 이 백신을 맞은 경우 10만 건당 1∼5번 정도 장폐색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은 로타 바이러스 자체에 의해 감염돼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이 백신과 부작용의 관계는 입증하기 쉽지 않다. 백신 거부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신 때문에 자식들이 심하게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다. 그들에겐 백신의 부작용이 과학인 셈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2017년 야외에서 놀던 아이가 사고로 이마가 찢어졌는데 파상풍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집에서 소독하고 상처를 꿰맸으나 6일 후 턱이 움츠러들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도 통제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파상풍 및 여타 백신을 맞은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중환자실을 비롯해 8주간이나 병원 신세를 지며 수억 원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의 부모는 이런 일을 겪고도 아이에게 백신 맞히는 것을 거부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감정의 호소 등에 휩싸여 백신 정책에 반감을 표하고 있다. 백신은 분명 과학이지만 백신의 유통과 보급, 기피와 거부엔 인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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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