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남한산청소년연구회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5. 3. 16:28 카테고리 없음

    어제 낮은 무척이나 더웠다. 이제 차 안에서 슬슬 에어컨을 켤 때가 되었다.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ack)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현대는 위험 앞에 누구나 평등하게 노출된 사회다.

    기온은 꽤나 큰 영향으로서 생태계 변화를 일으킨다. 2004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는 지구촌 생태계 변화의 약 90% 이상을 야기했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삶 자체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21세기에 접어들어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로서 자리 잡았다.  

    최근 읽은 『파란하늘 빨간지구』(조천호, 동아시아, 2019. 03.29)의 저자는 기후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야기해준다. 기후변화는 그 자체로 식량과 물, 에너지, 환경, 보건 등 사회 기반 체계에 빠른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나라만 해도 여름철 서해안 백령도 주변 바닷물 온도가 20℃를 넘어 아열대지역에 사는 백상아리가 나타났다. 또한 바다 표면 수온이 1.31℃ 상승해 오징어, 갈치 등이 새로이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 모든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급격한 변화들 중 일부다. 

    생물 개체군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면 표현형적(겉으로 드러나는 형질) 가소성을 발휘하거나, 유전적 진화를 통해 새롭게 적응하거나, 적당한 서식처로 이주를 한다. 이러한 기작들은 종의 개체, 개체군, 군집 수준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일반적으로 생물권에서는, 먹이사슬을 이루는 생산자와 소비자, 분해자의 관계가 기후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식물과 곤충의 계절적 특성에 따라 동물의 행동 특성이 영향을 받는 것처럼. 곤충의 서식지, 새의 산란시기, 철새의 도래시기, 꽃과 잎의 발아 및 개화시기 역시 기후변화로 인하여 생물권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가운데 몇 가지다.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유럽대륙 11,620개 지역에서 150만 번에 달하는 곤충 채집 연구가 있었다. 생물학자들은 19년 동안 상승한 기온으로 인해 새와 나비의 최적 서식지가 249km 북상했다고 추정했다. 더욱이 변온 동물인 곤충은 외부 기온이 변하자 체온을 바꾸며 성장 속도, 생활주기, 분포, 상호작용 등을 바꾸었다. 기온 변화에 따른 생물권 변화는 그간 어쩌면 당연한 일로 여겨왔다. 중요한 건 생물권 내에서만 벌어지는 변화가 아닌 무생물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내재한 분자 운동과 에너지를 맞추고 있다는 시각을 추가해 보아야 한다. 지구는 실제로 그렇게, 지금껏 흘러왔다. 

     

    『파란하늘 빨간지구』의 조천호 저자는 과거 기후를 알아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고 적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 반증에서 살아남은 역동적 진실이다. 사진 = 책 표지.

     

    기온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생존법

    우리는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그곳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가 겪어온 과정을 보면 남세균(광합성 세균)처럼 생명체가 직접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생명체와 환경은 함께 진화하는 것이다. 지구환경이 지속할 수 있으려면 그 안에 사는 생명체가 건강해야 하며, 생명체가 건강하려면 지구환경과 기후도 안정되어야 한다.  

    인류는 약 1만 년 전에야 농업을 시작했고, 7,000년 전에야 문명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조천호 저자는 약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고도 오랜 기간 인류가 오랫동안 문명을 탄생시키지 못한 이유에 대해 ‘기후’를 꼽았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의 극한 날씨보다 더 변덕스럽고 혹독한 기후에 맞섰다. 그런 기후에서는 농업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사냥꾼이자 채집자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12,000년 전에 빙하기를 뒤로하고 현재의 따뜻한 간빙기인 홀로세에 들어선 뒤 비로소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인류는 작물을 경작했고 점차 한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인류 문명이 등장한 것도 이 때쯤이었다. 해수면 상승이 일단락된 이후인 7,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이 처음 등장했다. 이어 이집트, 인더스, 황허로 이어졌다. 홀로세는 인간뿐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들이 넘치는 아름다운 보물 상자가 되었다. 현재 우리가 아는 한 홀로세는 인류가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다. 조천호 저자는 우리가 절박하게 홀로세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양서류의 1/5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이다.
    사진 =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3/03/130305200306.htm

     

    과거 기후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밝혀야

    지구온난화가 원인을 논하는 용어라면, 기후변화는 원인을 포함한 결과를 논한다. 20세기 중반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인간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작다고 보았다. 하지만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에서 발행한 평가 보고서와 특별 보고서를 보자면 인간이 기후변화를 일으켰다는 증거가 분명하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IPCC의 기후변화 전망에 따르면,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것이었다.   

    2018년 7월 독일, 스웨덴, 덴마크, 호주의 기후과학자 16명이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보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찜통 지구에 진입하면 지구 평균 기온이 4~5도 상승하게 되고 해수면이 10~60m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세계의 연안 지역, 특히 저지대 삼각주와 그에 인접한 연안의 바다 및 생태계가 위험해진다. 이 지역에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으며 대도시 대부분이 위치해 국가 경제와 국제 무역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담당하기에 경제적인 위험도 만만치 않게 된다. 

    기후변화가 절대적으로 확실해서 대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반증에서 살아남은 역동적 진실이기에 우리가 받아들이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 특히 과거의 기후를 살펴봐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사람들은 기상예측과 과학에 너무나 많은 기대를 걸고 신념을 가진다. 불확실한 미래는 과거 기후를 면밀히 살피는 데서 출발한다. 

    일교차가 큰 가을에 하루 동안 20도 차이가 나도 우리는 생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왜 미미해 보이는 1.5도 또는 2도에 민감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가. 우리는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당장 눈에 보이는 조치를 취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요행이 아니라 과학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행동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더 많은 산림화재와 가뭄이 나타나고, 열대성 폭풍우가 빈번해질 전망이다. 사진 = https://climate.nasa.gov/effects

     

    생물권에서 일어나는 진화적 변화들

    기후시스템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99.98%는 태양으로부터 온다. 이들 에너지는 기후시스템 속에서 여러 에너지로 변한다. 분자 수준마다 에너지 요구에는 얼마간 차이가 발생하는데 특히 난분해성 유기물일수록 온도 민감도가 높아 분해에 필요한 활성에너지가 더 많이 요구된다. 한 예로 캐나다 온타리오 지방 산림의 토양을 보면, 잎의 각피를 구성하는 난분해성 왁스 성분보다 리그닌이 포함된 토양유기물 성분의 분해가 더 빠르다. 기후시스템에서 기온 상승은 또한 대기가 머금는 수증기 양을 증가시키며, 광합성 작용으로 흡수되는 탄소와 호흡을 통한 배출정도도 크게 변화시킨다. 이 모든 것이 전반적인 생태변화를 야기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기후변화의 근원 중 하나는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다. 현재 산림생태계는 육지면적의 1/3을 차지하며 지구 전체 광합성 양의 약 2/3를 담당한다. 식물이 흡수한 탄소는 체세포 구성 물질로 바뀐 뒤 먹이피라미드를 거쳐 호흡을 통해 대기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교육으로 매우 흔하게 접한 상식이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기후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문구이기도 하다. 생지화학적 순환에서 탄소뿐 아니라 생물권과 암석권 사이에서 순환하는 산소, 대기권에서 고정되어 생물권으로 이동해 단백질이나 필수 유기분자가 되는 질소까지, 모든 물질의 흐름과 변화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된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알기 위해 생물권뿐 아니라 지권, 수권, 암석권 모두를 포함해 살펴봐야 함이다.      

    생물 진화의 시각에서 과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걱정한다. 우선은 기후변화가 생물권 내의 모든 동물에 같은 영향을 주지 않으며 동물 분류군에 따라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예로 나비와 새의 북상 속도에는 얼마간 차이가 있는데 상대적으로 수명이 더 짧은 나비의 경우 적응능력이 커 새보다 북상 속도가 빠르다. 이 경우 나비를 먹고사는 새들은 극단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영국의 박새는 알에서 깬 후 열흘 정도 나방의 유충을 포식해야 한다. 그러나 온난화로 인해 나방 유충의 출현 시기가 빨라지자 박새들은 먹이 포집에 곤란을 겪었고 결국 산란기를 새로 조정해 47년 전보다 2주 빨리 알에서 깨어났었다. 

    양서류의 경우 연평균 기온이 1℃ 상승함에 따라 9~10일 정도 빠르게 물가로 나타났다. 도마뱀은 특히 기후변화에 민감한데 때문에 전 세계 도마뱀 가운데 5%가 이미 멸종했다. 멕시코를 보더라도 도마뱀의 12%가 사라지고 남부 유럽에서도 30%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영향은 피라미드를 따라 상위 포식자로 올라갈수록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현재 남극 펭귄 숫자가 50% 가까이 줄고, 개체수가 줄어든 북극곰이 서로를 잡아먹기에 이른 것도 생태변화로 인한 나비 효과다.  
     
    인간 중심의 어휘가 되어있는 기후변화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두 번째는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기존의 생지화학적 순환 속도에 맞추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 100여 년간 평균 기온이 1.5℃ 증가했다. 0.6℃가 상승한 세계 평균과 비교하자면 꽤나 크다. 이로써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는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땅에 묻혀 있던 탄소를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끄집어냈다. 산업혁명 이후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은 탄소순환에 불균형을 초래하고 결국 지구 물질의 흐름을 바꾸어 기후변화를 야기하면서 전 권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생물 종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진화를 해야 할 위치에 놓여버렸다.  
     
    실제로 많은 생물종들은 지금껏 지구온난화에 대응하여 적절한 유전적 반응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빠른 기후변화는 개체로 하여금 유전적 반응에 앞서 가소성 내에서 보이는 반응을 먼저 유도시키고 있다. 이는 훗날 안정되지 못한 변화로 남아 더욱 불안정한 상태가 될 것이다. 생태계 구조와 기능은 미래에도 서로 영향을 끼치며 상호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건 생태 구성체들 간 이러한 매듭을 필연으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변화를 생물권 내로만 한정해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짜 위험은 우리가 마시고, 숨쉬고, 발을 딛고 있는 모든 곳에서도 생태변화가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id=304789&Page=&Board=news

     

    참고문헌


    1. 『기후변화 교과서 (기후변화와 한반도 생태계의 현황과 전망)』(최재천, 최용상, 도요새, 2011), pp 79~84, p. 439 이하.
    2. 『생태계와 기후변화』(정병곤, 김득수 외 4명, 동화기술, 2014), pp. 40~50. 
    3.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 (인간과 자연,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안병옥, 21세기북스, 2014), pp. 31∼34. 
    4. 『키워드로 보는 기후변화와 생태계』(공우석, 지오북, 2012), pp. 134~154..
    5. 『파란하늘 빨간지구』(조천호 저, 동아시아, 2019. 03.29)
    6. <(2017) 생태계의 주요 조절 기능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 연구>(홍승범 외, 국립생태원, 2017)
    7. <(2017) 생태계 기후변화 조사 연구>(국립생태원, 이상훈 외, 2017) pp. 1~13.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3. 26. 10:12 카테고리 없음


    유아들은 생후 18개월부터 4세까지 모방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기들은 부모의 표정을 따라 해야 보살핌을 받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모방은 사회성의 토대로서 조화와 결집을 위한 행위다. 지난해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 한 팀은 침팬지를 따라 하는 사람을 관찰한 바 있다. 이그노벨상은 하버드대 유머과학잡지에서 기발하거나 괴짜 연구를 한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인간의 행동 중 10% 정도는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침팬지를 모방했다. 물론 침팬지 역시 인간을 따라 했고,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가장 구체적인 행동은 하품이었다. 적의가 아니라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모방이다.


    최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공개된 연구에 따르면 말레이곰 역시 동료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따라 할 줄 안다. 말레이곰이 다른 말레이곰의 얼굴 표정을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따라 하는 건 처음 알려졌다. 연구진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중간에 공백기를 좀 두고 총 2년간 말레이곰을 연구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서 은둔하는 곰이라 정평이 나 있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한다는 건 눈치가 빨라야 하는, 매우 미묘한 소통 과정이다. 인간과 고릴라 외에 얼굴 표정의 정확한 모방이 관찰된 건 흔치 않다. 고릴라가 정확히 상대 고릴라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할 줄 안다는 연구 결과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말레이곰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말레이곰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곰으로 잡식성이다. 특히 말레이곰은 각자의 생활반경이 20% 정도까지 중복됨에도 불구하고 교미 시즌 외에는 다른 어른 곰들과 교류가 거의 없다. 꿀을 좋아하고 동작이 느려 ‘꿀곰’ 혹은 ‘느림보곰’으로도 불리는 말레이곰은 120∼150cm의 키에 몸무게는 80kg까지 나간다. 말레이곰은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며,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돼 있다. 말레이곰 숫자는 산림 벌채와 밀렵, 농작물 보호를 위한 사살 등으로 줄고 있다. 어미곰이 죽는 경우, 새끼곰들은 중국에서 몇몇 의약품 용도를 위해 ‘담즙 곰’으로 사육된다. 말레이곰 어미들은 대개 2마리의 새끼를 돌본다. 어린 말레이곰들은 어미곰 곁에서 3개월 정도 보살핌을 받는다.

    연구진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놀이 세션에서 22마리(15마리는 암컷) 말레이곰의 얼굴 표정들을 코드화했다. 2∼12세의 말레이곰들은 말레이시아의 한 보호센터에서 지냈다. 이곳은 야생과 비슷할 정도로 커서 곰들이 상호작용을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에서 10초 정도 진행되는 372번의 교감놀이에 참여했다. 거친 놀이보단 몸으로 밀치고, 뒤에서 물거나 잡으면서 토닥거리고 도망가는 등 온화한 놀이 세션에 2배 이상 더 많이 참여했다. 이 온순한 놀이에서 곰들은 명확히 얼굴 표정 따라 하기를 보여주었다. 교감놀이에서 연구진은 분명하게 구별되는, 1초 동안 위쪽 앞니를 드러내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류했다. 관찰 결과, 말레이곰은 명백히 구별되는 두 가지 방식의 입 벌리기를 총 931회 보여주었다. 

    얼굴 표정을 모방하며 학습하고 소통한다고 해서 종의 우월성이 입증되는 건 아니다. 말레이곰 역시 미묘하지만 정확하게 대면 소통을 할 수 있다. 그 비율은 약 30%에서 100% 사이였다. 물론 반응이 없는 녀석도 있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서 고립돼 살아가지만 놀랍도록 장난꾸러기다. 놀이를 하는 도중 적절한 교감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때론 싸움으로 변질된다. 

    복잡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춘 집단의 종들만이 그만큼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갖는다고 간주돼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보면 고립된 생활을 하는, 즉 단순한 사회적 시스템의 동물들 역시 정교한 소통 방식을 갖는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말레이곰은 상대방의 관심을 받을 경우 입을 벌리는 경향을 보였다. 입을 벌리는 행위는 호감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요컨대 복잡한 얼굴 표현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포유류에서 흔한 기질일 수 있다. 인간이 모를 뿐이다. 

    영장류나 개들은 서로를 모방하면서 생존법을 배운다. 미묘한 모방하기는 두 마리의 말레이곰이 서로 더 격한 놀이를 하거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신호를 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 역시 타인의 얼굴 표정을 정확하게 따라 하고, 이런 모방으로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런데 종종 타인의 시선과 표정은 화살이 돼 날아오기도 한다. 경멸과 비난의 표정은 그 얼굴을 바라보는 상대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결국 얼굴 표정의 신호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방의 유대로, 혹은 고통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3206623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3. 15. 16:55 카테고리 없음



    전 세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 홍역 때문에 하루에 약 300명이 사망하고 있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홍역 환자가 발생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또 유럽과 미국에선 유아들이 유난히 많이 홍역에 걸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60명 이상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해외 유입인 것으로 추정된다. 

    홍역은 몇몇 국가에서 영영 사라진 질병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일부 부모는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다. 집단의 면역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백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말, 홍역(Measles)과 볼거리(Mumps), 풍진(Rubella)을 뜻하는 이른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이 과학 학술지 ‘랜싯’에 실렸다. 당시 태어났던 유아들은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부모들에 의해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못했다. 과학에 대한 불신 혹은 배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전 세계 10대 보건 위협 중 하나로 백신 기피 현상을 꼽았다. 

    16일은 홍역 백신의 날이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홍역은 특히 면역체계가 약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어린이들을 사망이나 장애에 이르게 한다. MMR 백신은 안전하고, 접종자의 90∼95%가 효과를 본다.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않으면 90%가량이 홍역에 걸릴 수 있으며 폐렴, 설사, 중이염 등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때 홍역을 앓았다. 그때 정말 좋아했던 짜장면을 먹어도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 

    2017년 11만1000명이 홍역 때문에 사망했다. 대부분 5세 이하 어린이였다. 홍역 백신은 2000년과 2017년 전 세계 2210만 명의 아이를 죽음에서 구했다. 홍역의 첫 증상은 대개 고열이다. 홍역에 감염되면 10∼12일 새 눈이 붉어지고 발진이 생긴다. 홍역의 한자 ‘紅疫’은 좁쌀 같은 붉은 종기들이 생기는 전염병을 뜻한다. 홍역의 영어 단어는 고름, 물집을 뜻하는 중세 독일어 ‘masel’에서 파생됐다. 홍역은 주로 기침과 재채기 및 감염 부위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발생한다. 

    WHO는 2018년 전 세계적으로 홍역이 증가한 이유 중 30% 정도는 백신 기피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역은 집단 면역의 적정선이 무너지면 금세 확산 가능한 질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MMR 백신의 두 차례 무료 접종을 실시했다. 몸의 면역체계는 홍역 바이러스를 영원히 기억한다. 

    ‘백신(vaccine)’이란 말은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1749∼1823)로부터 유래했다. 그는 소의 발진성 피부질환인 우두(牛痘) 농포에서 고름을 짜 소년의 팔에 직접 주입하는 실험을 하며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천연두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인류를 절멸의 벼랑으로 몰았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런데 지금 백신에 대한 기피가 있듯 당시에도 우두접종법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제너의 방법은 입증되며 결국 많은 사람을 살렸다. 면역학의 아버지였던 제너는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백신이란 말을 고안해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난해 여름 로타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한 4개월 된 아이가 장이 말려들어가는 장중첩증과 장이 막히는 장폐색을 일으켰다며 백신 거부 운동의 확산에 대해 서술했다. 이 백신을 맞은 경우 10만 건당 1∼5번 정도 장폐색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은 로타 바이러스 자체에 의해 감염돼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이 백신과 부작용의 관계는 입증하기 쉽지 않다. 백신 거부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신 때문에 자식들이 심하게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다. 그들에겐 백신의 부작용이 과학인 셈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2017년 야외에서 놀던 아이가 사고로 이마가 찢어졌는데 파상풍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집에서 소독하고 상처를 꿰맸으나 6일 후 턱이 움츠러들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도 통제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파상풍 및 여타 백신을 맞은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중환자실을 비롯해 8주간이나 병원 신세를 지며 수억 원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의 부모는 이런 일을 겪고도 아이에게 백신 맞히는 것을 거부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감정의 호소 등에 휩싸여 백신 정책에 반감을 표하고 있다. 백신은 분명 과학이지만 백신의 유통과 보급, 기피와 거부엔 인간이 있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op_hty&fbm=1&ie=utf8&query=%EA%B7%BC%EA%B1%B0+%EC%97%86%EB%8A%94+%EB%B0%B1%EC%8B%A0+%EA%B1%B0%EB%B6%80%2C+%EC%95%84%EC%9D%B4%EA%B0%80+%EC%9C%84%ED%97%98%EC%97%90+%EC%B2%98%ED%95%A0+%EC%88%98%EB%8F%84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2. 27. 13:52 카테고리 없음


    영화 ‘사바하’는 보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박 목사(이정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정나한(박정민)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이다. 정말 무서웠던 건 정나한이 원혼들에게 쫓기는 장면이다. 정나한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만졌던 것들에 충실했다. 내 살에 닿은 것들이 결국 학습과 행위, 기억으로 뭉쳐진다.

    그런데 최근 생물학 저널 ‘셀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세포들 역시 학습이 가능했다. 뇌의 촉각 담당 영역이 신경세포의 학습과 기억에도 관여했다. 저차원의 촉각이 고차원적인 기질과 활동의 학습으로 확장된 셈이다.

    우리는 단순 업무를 오랫동안 하다가 생활의 달인이 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기본적인 자극들이 반복되다 보면 고도의 학습과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 대학의 청소부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증명하거나, 비디오 가게 점원이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는 게 정말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차적인 감각 영역이 초기에 작업의 일부를 감당한다면 정보들의 연결과 연합은 더 빠르고 더 잘 학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STOP’ 표지가 빨간색이고 육각형 모양을 갖고 있다는 걸 배우면 실제로 사고 직전에 멈출 수 있다. ‘STOP’이란 단어를 읽어내기 훨씬 전에 말이다. 생존을 위해 이점이 되는 능력이란 걸 뇌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쥐의 체성(體性) 감각 피질 실험 결과 뇌의 촉각을 관할하는 영역이 학습의 보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체성 감각이란 일명 체감이라고도 한다. 내 피부가 느끼는 뜨거움이나 차가움, 따가움이나 부드러움, 관절의 움직임 혹은 공간적 위치 등을 알아채는 것이다. 체성 감각 피질은 대뇌의 중간 부분을 띠로 이루고 있다. 보상 학습은 뇌가 어떤 한 행동을 즐거운 성과로 결부시키도록 해주는 복잡한 형태의 강화 학습이다. 회사에서 온몸으로 고생한 대가로 월급을 받거나 밤샘 공부를 하며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게 일종의 보상 학습이다. 

    쥐는 어두운 방에서 수염으로 작은 막대기를 감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쥐가 막대기를 발견하면 보상으로 레버를 당겨 물을 먹게 했다. 연구진은 쥐의 수염이 막대기를 건드리면 체성감각 피질이 활성화한다는 걸 예상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런데 쥐가 보상으로 물을 먹었을 때도 이 부분이 활성화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건 막대기를 치우고 쥐에게 물을 줘도 체성감각 수상돌기가 활성화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감각 피질과 보상 학습의 정보 연계는 획득된 것이다. 그러나 수염으로 막대기를 감지하는 훈련을 받지 않은 쥐는 물이라는 보상을 줘도 신경 활동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신경세포는 세포체, 수상돌기, 축삭돌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신경세포는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수상돌기를 갖고 있다. 신경세포 하나의 수상돌기는 수천 개에 이르기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 이웃하는 뉴런들과 정보들을 연결하고 송수신 전극을 보내면서 말이다.

    보상 학습은 일련의 행동들을 좋은 기분의 감각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다. 보상 학습에 대한 이전 연구들은 뇌의 다양한 영역, 즉 복측(배 쪽)피개 영역이나 소뇌 등과 연관돼 있다는 걸 밝혀왔지만 감각 피질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감각 정보들은 축삭돌기를 통해 연합피질로 보내진다. 그 속도는 약 시속 160km이다. 연합피질에선 정보를 모으고 체계화한다. 뇌의 가장 정교한 전두엽에서 다음 단계의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레버를 당겨 물을 보상받으려 하려는 것이다. 뇌는 신속하게 정보들의 복잡한 연결을 시도한다.

    뇌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정보들을 연결하는 데에는 훌륭하지만 연결의 총합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는 그동안 알 수 없었다. 체성감각 피질의 수상돌기 층들은 마치 케이크처럼 6개로 구별되는 층을 이룬다. 체성감각 피질의 뉴런들은 5∼6층의 안쪽 깊이 있지만, 이 뉴런들의 수상돌기는 가장 바깥, 높은 쪽까지 뻗어나갔다. 수상돌기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는 밀림의 덮개처럼 체성감각 피질의 가장 높은 층을 채우고 있다. 이 수상돌기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연구진은 쥐를 훈련시켜 간단한 감각 관련 작업을 수행케 했다. 하지만 뇌의 보상 학습의 주동력인 화학물질 도파민이 체성감각 피질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도파민과 비슷한 어떤 신경조절물질이 관여하고 있는지 알아가고자 한다.

    주위에 단순하고 감각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지 말지어다. 그들의 뇌 속에선 감각의 신경세포들이 언젠가 창의적인 싹을 틔우기 위해 부지런히 학습하고 있을지 모른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1. 2. 19:27 카테고리 없음

    영화 <아쿠아맨>(제임스 완 감독)이 인기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주제 의식 때문일 것이다. <아쿠아맨>은 잡종을 다룬다. 육지와 바다를 잇는 잡종이 왕을 넘어서 영웅이 된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잡종은 두 세계의 다리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인 잡종 '아쿠아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영화 이야기를 따르자면, 아틀란티스인들 역시 육지 위에서 살던 육지인이었다. 그러다 오만에 의해 자멸하면서 바다라는 이질적인 지역으로 갈라져갔다. 바다에 적응한 아틀란티스인이 우연히 육지의 인간과 사랑을 나누면서 잡종 ‘아쿠아맨’이 탄생한 것이다.


    자연에서 새로운 종은 어떻게 생겨날까? 종의 분화는 이지역성(異地域性)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 동물 또는 식물 개체군이 강이나 산맥 등에서 지리적으로 격리되면 가능하다. 분리된 두 그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격리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이된 유전적 차이를 축적한다. 마치 아틀란티스인과 육지인처럼 말이다. 결국 두 그룹의 DNA는 매우 달라져 두 개체군은 구분되는 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론 너무나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리적 격리가 일어났다고 해서 생식적 격리가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는 다양한 형태의 자연선택을 포함하는 힘들이 종 분화를 완성시킨다.


    최근 <분자생태학>에 공개된 논문에서 연구진은 짖는 원숭이(Howler monkey) 연구로 새로운 종 형성의 기작을 조사했다. 두 종의 짖는 원숭이의 상호교배 연구를 통해 새로운 종의 진화를 촉진하는 힘이 무엇인지 분석한 것이다. 연구결과를 보면 자연 선택의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종의 분화를 위해 생식적 격리를 할 때, 처음엔 다른 지역으로 막 퍼져나갔다가 나중엔 같은 지역에서 분기적 선택(divergent selection)을 한 것이다. 


    종 분화는 개체군들이 서로 갈라져 생식적으로 각각 분리될 때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이 과정에서 흔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생식적 격리가 종종 타 지역에 적응함으로써 분기되는 부산물로서만 여겨졌다. 하지만 동일 지역의 이종교배를 통해서도 종이 분화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영화 속 아틀란티스인과 육지인은 아쿠아맨이 태어나기 전까지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영화 초반에 보면, 아틀란티스 공주가 육지인 남자를 내팽개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해안가라는 동일 지역에서 공주와 인간 남자는 사랑하게 된다. 


    생식적 격리는 그 어떤 이종교배에도 불구하고, 한 종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순수 종의 개념과 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현대적 개념에서의 종이라는 건 완전한 생식적 격리를 요구하진 않는다. 자연에서 실제로 이종교배는 꽤 발견되었다. 20년에 걸친 DNA 샘플 분석 연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망토 짖는 원숭이와 검은 짖는 원숭이는 상호교배 하면서 잡종의 자손을 낳았다. 이 두 집단 간에 이종교배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종의 고유성과 관련한 생식적 격리는 불완전하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쿠아맨은 바다와 육지의 잡종으로 태어났다.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완전한 생식적 격리는 불가능하다

    망토 짓는 원숭이와 검은 짓는 원숭이는 약 3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1만 년 전 이내로 추측됨)까지 멕시코 남동부 타바스코주의 약 12마일 폭의 ‘하이브리드 존’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따로 살았다. 그간 하나의 종이라는 것은 다른 종으로부터 생식적으로 유리된 채, 실질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상호 교배하는 집단으로 규정돼 왔다. 우리나라 섬진강 고유의 민물고기인 줄종개가 동진강에 서식하던 점줄종개와 잡종을 이루어 잡종 무리가 번성한 사례도 있다. 줄종개와 점줄종개는 330만 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화해 다른 종이 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껏 진화 생물학자들은 두 집단 간 유전자 섞임의 장벽을 강화함으로써 자연 선택의 압력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즉, 두 집단을 완전한 생식적 격리로 몰아넣는 것이다. 자연 선택은 성공적으로 번식하는 유기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번식하지 못하면 외면 받는다. 따라서 자연 선택은 잡종에 반한다. 왜냐하면 잡종은 번식하기 전에 자주 죽거나 번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은 부적합 잡종의 형성을 막으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두 유기체 간 유전적 차이를 점진적으로 늘여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검은 짖는 원숭이와 망토 짖는 원숭이의 유전적 차이를 늘리는 것이다. 이로써 두 종의 원숭이는 짝짓기 하거나 잡종의 자손을 퍼뜨리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잡종의 출현을 막는 동안 자연 선택은 유전적 차이를 늘여감으로써 생식적 격리를 강화한다. 이 단계를 강화(reinforcement)라고 부른다. 이 강화 개념은 100년이나 지속되었지만 실증은 부족했다.

    연구진들은 유전 데이터에서 패턴을 확인했다. 그 결과 이종교배가 종들 간에 유전적 차이를 강화함으로써 종 분화 단계를 완성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음을 발견했다. 연구진들은 검증이 부족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강화 메커니즘을 포함해, 종들 간 차이를 유도하는 자연 선택의 신호를 발견했다. 이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왜냐하면 그간 강화에 대한 경험적 증거, 특히 유전적 증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연구진들은 자연적인 영장류 하이브리드 존을 활용하여 생식 격리와 관련된 장소의 동지역성(同地域性) 혹은 이지역성(異地域性)에 대한 자연 선택의 게놈 서열을 관찰했다.

    강화 개념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타바스코 하이브리드 존에 사는 검은 짖는 원숭이와 망토 짖는 원숭이의 DNA를 하이브리드 존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검은 짖는 원숭이와 망토 짖는 원숭이의 DNA와 비교했다. 다시 말해 생식적 격리와 관련 있을 거라 여겨지는 유전자 표지를 비교했다. 만약 강화 개념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어서, 자연선택이 요구하는 것처럼 이종교배를 좌절시키고 생식적 격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하려면, 하이브리드 존의 두 종 간 유전적 차이는 하이브리드 존 바깥의 양쪽에 각각 살고 있는 두 종 간 유전적 차이보다 커야 한다. 

    자연 선택에 반하여 잡종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이기에 종 간 생식적 격리가 강화되려면 더 큰 유전적 차이가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하이브리드 존에서 태어난 종들이 생식적 격리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분기되고 있기 때문에 짖는 원숭이 두 종이 공존하고 때론 교잡을 통해 상호 교배하는 하이브리드 존에서 강화는 종 분화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멕시코 타바스코의 젊은 수컷 짓는 원숭이. 생김새는 검은 짓는 원숭이처럼 보이지만, 이 원숭이는 망토 짓는 원숭이와 검은 짓는 원숭이의 잡종인 듯하다.

    사진 = https://phys.org/news/2018-12-howler-monkey-mechanisms-species-formation.html

     

    이종교배를 통해서도 가능한 종의 분화


    망토 짖는 원숭이와 검은 짖는 원숭이는 행동, 외모,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염색체 수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심지어 서식하고 있는 곳이 다르다. 하지만 멕시코 남동부의 타바스코 주에선 공존하고 상호교배 하면서 하이브리드 존을 만들었다. 연구진들은 망토 짓는 원숭이와 검정 짓는 원숭이 각각의 조상을 추적하기 위해 미토콘드리아와 핵 DNA 둘 다로부터, 유전자 표지(genetic markers)의 구분되는 형태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형태만으로 잡종을 식별하는 건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인간의 화석 기록에서도 이종교배의 가능성이 간과되었을 수 있다.

    짖는 원숭이가 인간 진화의 측면에서 이종교배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초기 인류가 다른 종들과 이종교배하여 혼종의 자손을 낳았을까? 최근 유전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들이 수만 년 전에 중동 지역에서 해부학적으로 현대 인류의 종들과 상호교배해서 유전자 풀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석의 기록은 이종교배를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종교배는 유전적으로 구별되는 개체군들 간 상호교배의 자손 번식으로 정의된다. 앞으로 ▲ 이종교배의 단계 ▲ 잡종 개체군들의 형태학적 표현을 좌우하는 요소 ▲ 종들 간 생식적 격리 정도를 더 알아가다 보면 인류의 진짜 민낯이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2. 25. 13:36 카테고리 없음


    빛, 아메바, 인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언제나 최단 경로를 택해 이동한다는 점이다. 혹은 그런 경향을 지닌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인간은 실수로 혹은 그저 최단 경로를 택하지 못하거나 안 할 수 있다. 내가 휴일에 도서관, 중국집, 영화관, 커피숍을 들르기로 했다면 동선을 고려해 갈 순서를 정해야 한다. 이를 계산과학에선 일명 ‘여행하는 외판원 문제(TSP·Traveling Sales Problem)’로 간주해 푼다. 즉, 동선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황색망사점균(Physarum polycephalum)’을 이용해 최단 거리 문제를 풀어 보고자 했다. 황색망사점균은 단일 세포로서 아메바처럼 자유자재로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점균류는 빛을 피해 먹이를 찾아간다. 그래서 황색망사점균은 지하철이나 도로의 연결, 심지어 미로를 푸는 데도 적용됐다. 그런데 최근 ‘영국 왕립 오픈 사이언스’엔 좀 더 진전된 실험 결과가 공개됐다. 젤리 형태의 황색망사점균이 최단 거리 찾는 문제가 복잡해져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그만큼 복잡해지지 않고 정중동(靜中動)의 미를 지킨 것이다.

    내가 들러야 하는 곳이 도서관, 식당, 영화관, 커피숍뿐만 아니라 헬스장, 이발소, 마트, 호프집으로 늘어난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4군데만 들러야 하면 한 출발점에서 갈 수 있는 방법은 3가지(2분의 3!)뿐이다. ‘!’는 계승(팩토리얼)이다. 8군데로 늘어나면 2520가지(2분의 7!)나 된다. 가야 할 곳이 늘어남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건 훨씬 더 늘어났다. 하지만 황색망사점균은 딱 2배의 시간만 더 들여 해법을 찾아냈다.

    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진 반면, 처리 시간은 단지 선형적으로만 증가했다. 모든 시스템은 언제나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황색망사점균은 분명 컴퓨터보다 느리다. 하지만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인 황색망사점균은 보통 컴퓨터의 처리 방법보다 더 나은 대안적 처리 방법을 제공했다. 물론 점균류가 직접 도시를 찾아다니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 도시들은 64개의 채널, 즉 8개 도시가 8개 채널을 갖고 있는 실험으로 대체했다. 세균 배양액 위 둥근 접시 위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황색망사점균은 세균 배양액에 접근해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빨아들이기 위해 각 채널들로 들어갔다. 여행하는 외판원 문제는 황색망사점균이 몸의 형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나의 몸이 하나의 채널로 들어갈 때, 다른 몸은 두 번째 채널로 들어가게 된다. 이 변형은 계속 이어진다. 황색망사점균이 최적의 방법으로 도시들에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빛을 사용했다. 황색망사점균는 빛을 싫어한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채널들이거나 이미 방문했던 채널들 혹은 몇몇 채널들을 동시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놀랍게도 가능한 배열의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황색망사점균은 최적화된 방법을 알아내는 데 기하급수적인 시간이 더 걸리지 않았다. 늘어난 경우의 수만큼 복잡해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최단 거리를 찾아내는 방법의 품질은 떨어지지 않았다. 검색 공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황색망사점균은 끊임없이 일정한 속도로 자신의 새로운 형태를 테스트했고, 동시에 시각적 피드백을 처리했다. 이 점을 컴퓨터가 배울 수 있다. 이번 실험에선 플레이트가 충분히 크지 않아서 8개의 채널만으로 실험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황색망사점균이 자연스레 안정적인 평균 상태를 추구하려는 성질을 볼 때, 수백 개의 도시들에서 최적의 방법을 계산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지어 아메바 TSP라 불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개발해 황색망사점균의 처리 패턴을 모방하고 있다.

    황색망사점균이 거의 정확한, 짧은 거리를 찾아내는 메커니즘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메바와 비슷한 황색망사점균에 영감을 받은 전기 회로는 변수가 많아지고 제약 조건이 늘어날 때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수리적 계산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한 다족보행 로봇의 알고리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기대했다.

    한편 최근 인간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미생물 수백만 종이 땅속 깊은 곳에서 발견됐다. 심층탄소관찰의 10년에 걸친 추적 끝에 지구의 바다 부피 거의 2배에 해당하는 곳에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작은 유기체, 잘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때론 어려운 문제들에 해답을 제공한다.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2. 21. 20:55 카테고리 없음


    1956년 미국 프린스턴대 조지 밀러 교수는 ‘마법의 숫자 7, ±2’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5개에서 9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송금할 때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단번에 외우지 못하는 건 인간의 작업 기억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밀러 교수의 주장은 어떤 내용을 어느 시점에 외우는지와 일반화라는 측면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다만, 좀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의미 있는 기본 단위를 ‘덩어리(chunking)’로 기억하고 배열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창의적 활동의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구조화하는 능력이 정말 있는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그냥 기본 정보들을 연결하는 게 훨씬 쉬운 설명이었다. 정보들을 위계화하고 배열하는 능력이 어떤 활동인지와 무관하게 별도로 존재하는가? 그런데 최근 생명과학 온라인 저널 ‘e-라이프’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뇌파(뇌전도·EEG)를 이용해 그런 제어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특히 탁월한 작업 기억 능력은 관념적인 정보들을 활용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잘 치는 이들은 박자나 기호들의 규칙, 음표의 조합 등 기본 요소를 하위 단위로 잘 묶어서 끄집어냈다. 노래하거나 춤을 추고 혹은 프로그래밍 등을 하려면 우선 기교의 기본 요소들을 불러내 창의적인 방법으로 정렬하고 재조합해야 한다. 기본 요소들은 응축된 개념으로서 재현 혹은 표상 단계를 거쳐 숙련된 작업으로 나아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과학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기계가 대신할 테니 골치 아픈 교육이 필요하겠느냐는 강한 주장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 오히려 거꾸로 수학·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개념들을 구조화하고 재배치하는 데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연구팀은 뇌전도의 전기적 활성과 진동 패턴들을 측정했다. 이로써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달리 시간적 제약과 다른 요인들이 섞이는 가능성을 배제하며, 뇌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구체적인 모습들을 포착했다. 실험 참가자 88명은 두피에 전극을 달고 복잡하고 순차적인 행동 양식을 수행했다. 이들에게 45도, 90도, 135도 방향의 선분 총 9개가 주어졌다. 3개의 선분이 순차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묶였고, 3개의 덩어리가 정렬되었다. 각 덩어리에서 선분이 배열될 수 있는 방법은 3 곱하기 2로 6가지인데 중복이 허용되므로 6 곱하기 6 곱하기 6, 다시 각 덩어리가 배열되는 방법도 3 곱하기 2로 6가지이므로 경우의 수는 1296가지이다. 다만, 각 덩어리 내 선분들은 언제나 45도, 90도, 135도 방향이므로 실제로 나타나는 건 216가지뿐이다.

    이제 피실험자들에게 각 덩어리와 선분의 배열을 기억하게 하고 테스트했다. 이때마다 뇌전도는 진동 패턴들을 나타냈다. 뇌전도에서 알파 영역대(8∼12Hz)는 기본 요소들을 기호화해 불러낼 때, 세타 영역대(4∼7Hz)는 그 기본 요소들이 정렬될 때 나타났다. 이로써 어떤 기본 요소들이, 어느 지점에서 덩어리로 묶여, 어떤 작업들을 수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친다면 전체 악보에서 어느 마디, 어떤 음표를 연주하고 있는지 뇌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즉, 순간순간 기본 요소들의 덩어리를 지정(addressing)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좀 더 추상적인 수준의 강한 뇌전도 패턴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즉, 복잡하고 연속적인 작업들을 수행해내는 걸 힘들어했다. 결국 작업 기억 능력이 탁월해야 뇌의 현재 특정 영역이 활성화했다. 한마디로, 어느 작업이든 우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며, 종합하는 게 필요했던 셈이다. 뇌가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기억하려면 추상적 재현 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당연하겠지만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 수학·과학이야말로 고도의 추상적 논리와 현상에 대한 분석 및 종합적 사고 능력을 배양해주는 학문이다. 연구진은 이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순차적 지정 시스템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창의성은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건 바로 그 영역에서 기본이 얼마만큼 충실한가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으면 작업 기억 능력은 분명 배가될 것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0. 25. 10:15 카테고리 없음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문가들과 국내 과학기술교육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각종 과학기술 경연장, 예를 들면 과학올림피아드나 로봇경진대회 우승자들이 대부분 의대 진학을 희망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전문가는 그게 왜 나쁘냐고 되물었다. 의대에 가서 로봇 수술을 하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의학을 전공한 후 바이오나 헬스 분야 정보기술(IT) 등 융합 산업에 걸맞은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반문이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가능성이다. 


    2018년 4월 22일 한국정보올림피아드(KOI) 개선방안 공청회가 열렸다. 4월 14일 열린 제35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지역대회 문제에 오류가 있어 앞으로 어떻게 바꿔 나갈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초등(1문항), 중등(2문항), 고등부(4문항)에서 총 7문제의 오류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해답 없는 문제들을 푸느라 다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겼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결국 147명을 구제해 본선인 전국대회를 치르게 할 계획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오류의 가능성은 시험의 답안 중 하나로 고려하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소프트웨어든 정보과학이든 과학기술이든 언제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정보’를 겨루는 대회라면 정보가 제시되는 과정(문제)의 오류를 알아차리는 능력도 물어보면 안 될까. 정답 없음과 복수 정답 역시 가능성으로 열어둘 수 없느냐는 뜻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출제위원의 전문성, 문제에 대한 검증 미숙, 논란이 되고 있는 보편교육과 영재교육의 차이가 아니다. 좋은 소프트웨어교육,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과연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새로운 이름의 대회를 만들고, 다른 출제위원들이 합류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중요한 건 학생들이 코딩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며, 공정한 경쟁과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련의 과정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학교가 관료적일 수밖에 없다고 가장 유연해야 할 소프트웨어교육이 ‘하드’해질 순 없다. 


    논리적 사고훈련과 소프트웨어교육은 정말 즐거워야만 능력을 꽃피울 수 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교육의 의무화와 이에 따른 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이 늘고 있다. 각종 인증과 대회는 또 다른 사교육을 낳고,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각 문제들의 내용은 차치하고 지역대회가 필기시험으로 치러진 것도 비판이 제기됐다. 아무리 예선대회라지만 소프트웨어 관련 수리퀴즈, 자료구조나 알고리즘 등을 프로그래밍과 컴퓨팅에 연결하는 문제를 종이로 풀어야 하는 것일까. 이건 마치 전국 축구대회에 앞선 지역 예선대회를 필기시험으로 치르는 것과 같다. 헤딩과 패스하는 방법, 골 결정력을 높이는 비결, 축구의 규칙 등을 잘 알아야 필드에서 제대로 뛸 수 있다는 논리다. 소프트웨어와 축구는 둘 다 머리와 몸으로 하는 신체 활동이다. 


    자유로움이야말로 소프트웨어의 미래다. 정말 심심풀이로, 재미있어서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 사용자들의 주목을 받는 세상이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기업들은 탄생과 성장 자체가 자유로움이었다. 이 기업들은 이제 미국 전역의 학교에 소프트웨어교육을 보급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교육이 변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의 꿈은 실현되기 힘들다. 소프트웨어능력을 어떻게 정답이 정해진 5지 선다형 시험(OMR카드)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 


    특히 소프트웨어교육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나의 합리적 판단과 수리적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깨닫는 절차여야 한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인 ‘정보’를 다루는 대회는 소프트웨어 (정보의 구조)의 사고방식을 가꿔가는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나의 능력을 계속 테스트하고 극복하다 보면 훌륭한 프로그래머로 성장할 수 있다.  


    1950년대 중반 소트프웨어(SW), 비트(Bit), 인공지능(AI)이란 말이 등장한다.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객관화(외부화)해 기계적으로 작동시킬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70년도 채 안 된 사이 인공지능이 인간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훌륭한 수리과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의 헌신 덕분이다. 


    소프트웨어교육과 대회는 창의력을 견주는 장이다. 프랑스의 ‘에콜42’라는 소프트웨어 인재양성소는 입학시험만 한 달 동안 치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진짜 실력을 겨뤄보는 것이다. 각종 장관상과 기관장상들이 소프트웨어학교에 입학하는 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공정하게 실력을 겨루는 건 언제나 필요하다. 소프트웨어교육이 ‘하드’한 관료적 대회와 공모전으로 점철된다면 진짜 실력을 겨룰 수 없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0. 20. 17:14 카테고리 없음


    프랑스 수학자 로랑 슈바르츠(1915∼2002)는 고등학생 때 본인이 수학을 못한다고 걱정했다. 똑똑하지 못해 수학 문제를 잘 못 푼다고 자책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50년 수학에서 가장 영예로운 필즈상을 수상했다. 슈바르츠는 고전학자와 수학자의 길 중에서 기하학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수학을 선택했다.

    여성 최초의 필즈상(2014년)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하니(1977∼2017)는 중학생 때 수학교사의 질타로 인해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기하학의 난제 중 하나인 ‘모듈라이 공간(modulispace)’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필즈상을 받았다. 모듈라이 공간은 기하학적 분류 문제(다른 모양, 같은 위상)에 대한 일종의 해결책이다. 그녀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딴 적도 있다.

    위의 두 수학자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인 분야는 바로 ‘기하학’이다. 기하학은 수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야다. 만물은 모양을 갖추고 있고, 그 모양을 감싸는 공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하학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뿔나게 했다. 2022년 수능에서 수학·과학의 출제 범위를 축소한다는 교육부의 개편안 때문이다.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약학, 의학 등 과학 관련 학회와 단체들은 현재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핵심은 ‘기하’와 ‘과학II’를 수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목들이 빠지면 이공계의 기초학력이 저하되고 교육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와 과학기술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2018년 제59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7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종합 1위에 비해 6계단 하락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순위가 상승해 오다가 갑자기 여러 계단 하락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을 대학 입시에 쓸 수 없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래서 과학고 학생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해보면 과연 수학의 위상이 한국에서 어떤지 알 수 있다. 수학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 목적 자체가 아니다. 수학적 사고가 잉태하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문화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답습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인지 한국은 아직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학력 저하의 문제는 ‘기하’와 ‘과학II’의 포함 여부나 국제 대회 성적의 입시 반영에만 있는 게 아니다. 더욱 심각한 건 교육과 평가의 방식에 있다. 

    수능에서 수학은 100분 동안 30문제를 풀어야 한다. 수학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돼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느끼는 수학 불안은 최고조에 달한다. 자유롭게 사유하고 자신의 실력을 최대화해야 하는데 5지 선다와 단답형으로 답안을 이끌어내려면 숨이 막힌다. 수학에선 답이 틀려도 과정이 정확히 맞으면 정답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숫자가 틀려도 말이다.

    인구의 약 20%가 수학 불안을 느낀다. 수학을 못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평가와 교사들의 방식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다. 당황하면 사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수학을 잘한다는 건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논리적으로 풀어 헤쳐 나간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답을 잘 찾는다고 좋은 수학자가 될 순 없다. 그렇다면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평가 역시 유연해져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처음 언급한 세계경제포럼은 앞으로 필요한 능력 1순위로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꼽는다. 그 다음이 창의성이나 협업 능력, 감성 지능, 비판적 사고, 판단력, 유연성 등이다.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의 근간은 바로 수학(數學)의 힘이다.

    최근 한 교육 주간지를 보면서 실기시험 없이 체대를 간다는 제목에 눈을 의심했다. 처음엔 의아했으나 ‘와이 낫?(왜 안 되지?)’이라는 물음이 생겼다. 요샌 미대도 실기시험 없이 입학이 가능하다. 물론 모든 전형이 실기가 없는 건 아니다. 학원에서 배운 기능적 실기만으로 미대나 체대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대학은 탁월한 학습 능력을 보인 학생의 예체능적 가능성을 살핀 것이다. 학생의 평상시 관심과 노력의 흔적은 필수다.

    미대나 체대에서도 수학·과학적 능력이 매우 중요시된다. 그래서 대학은 전략적으로 내신과 수능 성적에서 등급 컷이 높은 학생들을 선호한다. 현대의 스포츠는 이미 수학·과학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교육정책의 혼선과 잦은 변화, 나쁜 평가 방식 때문에 학생들은 어떤 수학·과학을 공부해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수학 불안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