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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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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2. 27. 13:52 카테고리 없음


    영화 ‘사바하’는 보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박 목사(이정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정나한(박정민)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이다. 정말 무서웠던 건 정나한이 원혼들에게 쫓기는 장면이다. 정나한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만졌던 것들에 충실했다. 내 살에 닿은 것들이 결국 학습과 행위, 기억으로 뭉쳐진다.

    그런데 최근 생물학 저널 ‘셀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세포들 역시 학습이 가능했다. 뇌의 촉각 담당 영역이 신경세포의 학습과 기억에도 관여했다. 저차원의 촉각이 고차원적인 기질과 활동의 학습으로 확장된 셈이다.

    우리는 단순 업무를 오랫동안 하다가 생활의 달인이 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기본적인 자극들이 반복되다 보면 고도의 학습과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 대학의 청소부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증명하거나, 비디오 가게 점원이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는 게 정말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차적인 감각 영역이 초기에 작업의 일부를 감당한다면 정보들의 연결과 연합은 더 빠르고 더 잘 학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STOP’ 표지가 빨간색이고 육각형 모양을 갖고 있다는 걸 배우면 실제로 사고 직전에 멈출 수 있다. ‘STOP’이란 단어를 읽어내기 훨씬 전에 말이다. 생존을 위해 이점이 되는 능력이란 걸 뇌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쥐의 체성(體性) 감각 피질 실험 결과 뇌의 촉각을 관할하는 영역이 학습의 보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체성 감각이란 일명 체감이라고도 한다. 내 피부가 느끼는 뜨거움이나 차가움, 따가움이나 부드러움, 관절의 움직임 혹은 공간적 위치 등을 알아채는 것이다. 체성 감각 피질은 대뇌의 중간 부분을 띠로 이루고 있다. 보상 학습은 뇌가 어떤 한 행동을 즐거운 성과로 결부시키도록 해주는 복잡한 형태의 강화 학습이다. 회사에서 온몸으로 고생한 대가로 월급을 받거나 밤샘 공부를 하며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게 일종의 보상 학습이다. 

    쥐는 어두운 방에서 수염으로 작은 막대기를 감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쥐가 막대기를 발견하면 보상으로 레버를 당겨 물을 먹게 했다. 연구진은 쥐의 수염이 막대기를 건드리면 체성감각 피질이 활성화한다는 걸 예상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런데 쥐가 보상으로 물을 먹었을 때도 이 부분이 활성화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건 막대기를 치우고 쥐에게 물을 줘도 체성감각 수상돌기가 활성화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감각 피질과 보상 학습의 정보 연계는 획득된 것이다. 그러나 수염으로 막대기를 감지하는 훈련을 받지 않은 쥐는 물이라는 보상을 줘도 신경 활동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신경세포는 세포체, 수상돌기, 축삭돌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신경세포는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수상돌기를 갖고 있다. 신경세포 하나의 수상돌기는 수천 개에 이르기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 이웃하는 뉴런들과 정보들을 연결하고 송수신 전극을 보내면서 말이다.

    보상 학습은 일련의 행동들을 좋은 기분의 감각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다. 보상 학습에 대한 이전 연구들은 뇌의 다양한 영역, 즉 복측(배 쪽)피개 영역이나 소뇌 등과 연관돼 있다는 걸 밝혀왔지만 감각 피질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감각 정보들은 축삭돌기를 통해 연합피질로 보내진다. 그 속도는 약 시속 160km이다. 연합피질에선 정보를 모으고 체계화한다. 뇌의 가장 정교한 전두엽에서 다음 단계의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레버를 당겨 물을 보상받으려 하려는 것이다. 뇌는 신속하게 정보들의 복잡한 연결을 시도한다.

    뇌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정보들을 연결하는 데에는 훌륭하지만 연결의 총합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는 그동안 알 수 없었다. 체성감각 피질의 수상돌기 층들은 마치 케이크처럼 6개로 구별되는 층을 이룬다. 체성감각 피질의 뉴런들은 5∼6층의 안쪽 깊이 있지만, 이 뉴런들의 수상돌기는 가장 바깥, 높은 쪽까지 뻗어나갔다. 수상돌기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는 밀림의 덮개처럼 체성감각 피질의 가장 높은 층을 채우고 있다. 이 수상돌기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연구진은 쥐를 훈련시켜 간단한 감각 관련 작업을 수행케 했다. 하지만 뇌의 보상 학습의 주동력인 화학물질 도파민이 체성감각 피질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도파민과 비슷한 어떤 신경조절물질이 관여하고 있는지 알아가고자 한다.

    주위에 단순하고 감각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지 말지어다. 그들의 뇌 속에선 감각의 신경세포들이 언젠가 창의적인 싹을 틔우기 위해 부지런히 학습하고 있을지 모른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2. 21. 20:55 카테고리 없음


    1956년 미국 프린스턴대 조지 밀러 교수는 ‘마법의 숫자 7, ±2’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5개에서 9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송금할 때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단번에 외우지 못하는 건 인간의 작업 기억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밀러 교수의 주장은 어떤 내용을 어느 시점에 외우는지와 일반화라는 측면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다만, 좀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의미 있는 기본 단위를 ‘덩어리(chunking)’로 기억하고 배열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창의적 활동의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구조화하는 능력이 정말 있는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그냥 기본 정보들을 연결하는 게 훨씬 쉬운 설명이었다. 정보들을 위계화하고 배열하는 능력이 어떤 활동인지와 무관하게 별도로 존재하는가? 그런데 최근 생명과학 온라인 저널 ‘e-라이프’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뇌파(뇌전도·EEG)를 이용해 그런 제어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특히 탁월한 작업 기억 능력은 관념적인 정보들을 활용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잘 치는 이들은 박자나 기호들의 규칙, 음표의 조합 등 기본 요소를 하위 단위로 잘 묶어서 끄집어냈다. 노래하거나 춤을 추고 혹은 프로그래밍 등을 하려면 우선 기교의 기본 요소들을 불러내 창의적인 방법으로 정렬하고 재조합해야 한다. 기본 요소들은 응축된 개념으로서 재현 혹은 표상 단계를 거쳐 숙련된 작업으로 나아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과학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기계가 대신할 테니 골치 아픈 교육이 필요하겠느냐는 강한 주장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 오히려 거꾸로 수학·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개념들을 구조화하고 재배치하는 데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연구팀은 뇌전도의 전기적 활성과 진동 패턴들을 측정했다. 이로써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달리 시간적 제약과 다른 요인들이 섞이는 가능성을 배제하며, 뇌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구체적인 모습들을 포착했다. 실험 참가자 88명은 두피에 전극을 달고 복잡하고 순차적인 행동 양식을 수행했다. 이들에게 45도, 90도, 135도 방향의 선분 총 9개가 주어졌다. 3개의 선분이 순차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묶였고, 3개의 덩어리가 정렬되었다. 각 덩어리에서 선분이 배열될 수 있는 방법은 3 곱하기 2로 6가지인데 중복이 허용되므로 6 곱하기 6 곱하기 6, 다시 각 덩어리가 배열되는 방법도 3 곱하기 2로 6가지이므로 경우의 수는 1296가지이다. 다만, 각 덩어리 내 선분들은 언제나 45도, 90도, 135도 방향이므로 실제로 나타나는 건 216가지뿐이다.

    이제 피실험자들에게 각 덩어리와 선분의 배열을 기억하게 하고 테스트했다. 이때마다 뇌전도는 진동 패턴들을 나타냈다. 뇌전도에서 알파 영역대(8∼12Hz)는 기본 요소들을 기호화해 불러낼 때, 세타 영역대(4∼7Hz)는 그 기본 요소들이 정렬될 때 나타났다. 이로써 어떤 기본 요소들이, 어느 지점에서 덩어리로 묶여, 어떤 작업들을 수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친다면 전체 악보에서 어느 마디, 어떤 음표를 연주하고 있는지 뇌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즉, 순간순간 기본 요소들의 덩어리를 지정(addressing)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좀 더 추상적인 수준의 강한 뇌전도 패턴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즉, 복잡하고 연속적인 작업들을 수행해내는 걸 힘들어했다. 결국 작업 기억 능력이 탁월해야 뇌의 현재 특정 영역이 활성화했다. 한마디로, 어느 작업이든 우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며, 종합하는 게 필요했던 셈이다. 뇌가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기억하려면 추상적 재현 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당연하겠지만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 수학·과학이야말로 고도의 추상적 논리와 현상에 대한 분석 및 종합적 사고 능력을 배양해주는 학문이다. 연구진은 이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순차적 지정 시스템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창의성은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건 바로 그 영역에서 기본이 얼마만큼 충실한가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으면 작업 기억 능력은 분명 배가될 것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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