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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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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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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22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의 의미
    2018. 11. 22. 20:54 카테고리 없음
    한때 국내 영어공용화론이 논쟁이 되었던 적이 있다. 이미 세계 시민사회 시대에 영어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영어가 특정 집단에 독점적으로 세습되고 교육되다 보니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 국민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논쟁이 펼쳐졌고 결국 영어공용화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에 대한 언어 이상의 고민이 늘 필요하다.

    현재도 한국에선 영어로 대학을 가고, 영어로 직장을 구하고, 영어로 문화를 주도한다. 전 세계적으론 모든 콘텐츠가 유튜브로 몰리고, 영어를 알면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 강도와 독점력은 줄어들었지만 영어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이자 언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이미 영어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국영수 중심의 학과 편성에서 영어는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세계 시장을 석권했고, 학술의 모든 언어는 영어이다. 자국어로 연구해 노벨상을 탄 일본 역시 연구결과를 공개하기 위해선 영어 번역이 필요했다. 영어가 서구 중심의 언어이긴 하지만 소통의 도구이자 세계를 해석하는 창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 바벨탑을 세우는 단 하나의 언어가 꼭 있어야만 한다면, 굳이 영어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 영어는 단지 여러 언어 중 하나일 뿐이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지금도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영미권 나라들은 영어교육과 어학연수 등으로 관광 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심각하게 영어를 ‘잘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더욱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소위 발음 좋고 술술 막힘없이 말을 하니 원어민들이 정말 영어를 잘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경기도 광주의 기숙형 대안학교 성문밖학교엔 여러 명의 원어민들이 눈에 띈다. 미국에서 역사와 정치를 전공한 세스(Seth), 뉴질랜드 출신의 호탕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포나무(Ponamu), 미국인이지만 소탈한 청년으로 느껴지는 라일리(Reilly) 등. 이들은 당연히 모두 영어를 잘 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서투른 영어를 하더라도 잘 들어준다는 사실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어린 학생들의 말들은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원어민 선생님들은 참 잘 들어준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영어를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는 다른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그 실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언어에 대한 감각도 필요하고, 꾸준한 연습도 요구된다. 영어 스터디 그룹에서 영어를 학습한 적이 있는데, 재미교포 출신의 실력 좋은 친구는 매일 한 문단씩 외운다고 했다. 아니, 이미 영어를 원어민처럼 쓰는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 있으면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습 차원에서 영어 문단을 외운다고 했다. 영어를 잘 하는 이들은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탐구한다. 단지 발음만 좋은 게 아니다. 영어를 잘 하는 원어민들은 당연하지만 영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학습한다. 그게 일상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단어 apple만 하더라도 뜻이 변할 수 있다. 대화중에 기업 apple사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그 맥락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언급하며 apple을 인용한다면 사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만큼 언어를 안다는 건 역사와 문화, 정치와 사회, 예술과 철학을 모두 아우르는 일이다. 

    토플 시험은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4개 영역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각 영역들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이 돼 있다. 말하기를 잘 하기 위해서 말하기 연습만 해선 안 된다. 잘 듣고,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읽어야 할 말이 많아지고, 쓸 거리가 늘어난다. 영어를 외국어로 학습해야 하는 입장에서 읽기는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하며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학습이다. 읽기가 멈추는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무식해보일 수 있으나 독해가 가장 중요하다.  

    더불어 영어는 습관이다. 밥을 먹듯이 영어를 섭취(학습)하고, 소화시키면 된다. 때론 영어의 뜻이나 의미를 잊어버려도 된다. 그러다가 다시 필요해지면 그 영어(밥)를 찾아서 먹으면 된다. 밥은 매일 세 끼를 먹으며 포만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영어는 하루 세 번 이상은 학습하고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포식하면 안 좋듯이 영어도 한꺼번에 이루려면 몸이 힘들어진다.

    지금껏 정말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왔다. 그 중에 영어를 정말 잘 한다고 느끼게 해준 이들은 모두 상대방의 말을 배려해서 들을 줄 알았다. 화자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은 영어를 못 하는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영어를 원어로 쓰는 그들의 몫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말인 영어, 특히 은어나 약어 등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영어를 ‘잘 한다’는 건 영어가 불러오는 언어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잘 듣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우리들은 새로운 문화와 변화를 읽어내면 그만일지 모른다.

    * <광주시민저널> 제53호 교육칼럼입니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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