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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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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3. 22. 15:59 카테고리 없음

    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2017.10)을 보았다. 병자호란과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치욕적 역사, 두 충신의 날선 대립, 민초들의 고달픈 삶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삼궤구고두는 인조가 청의 황제 칸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조아렸던 굴욕이다. 청의 황제는 삼전도비를 세워 조선의 굴욕을 영원히 기억하게 했다. 삼전도비는 송파 석촌호숫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핵심은 실리를 추구했던 최명길과 명분에 목숨을 건 김상헌의 대립이었다. 명분을 살려서 청에게 궤멸할 인가, 아니면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참아가며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두 충신의 한숨과 고민이 이곳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내가 영화에서 주목한 건 배우 고 수가 연기한 ‘서날쇠’라는 인물이다. 전쟁에 부인과 딸을 잃고 남한산성에 들어와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그다. 서날쇠는 남한산성에 살았던 민초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서날쇠는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양반네들을 믿지 않는다던 서날쇠의 한 맺힌 울부짖음은 남한산성에 살던 지역민들의 생채기였을 것이다. 만약 남한산성에 살던 지역민들의 삶이 더 자세히 기록돼 있고 보존되었다면 어땠을까? 지역문화와 역사를 외부의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민들이 직접 찾아서 알렸다면 서날쇠는 허구가 아니라 김상헌과 최명길처럼 실존했던 인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줬던 서날쇠는 남한산성에 살았던 이름 없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성문밖학교 교사들이 주축으로 된 남한산청소년교육연구회에서는 2017년 제1차 경기도 따복공동체 도민참여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약 4개월가량 추진한 연구의 주제는 ‘남한산성면 지역공동체 문화적 자산에 대한 현황조사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지역도민들과 학생들이 참여하여 지역문화의 현황을 파악하고 조사했다. 남한산성에 어떤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이 있는지 지역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지역민이라 함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지역에 함께 생활하고 그 공간을 점유하는 이들 모두 지역민이다. 지역민과 지역성은 넓은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 남한산성에 관심이 있고, 연구하는 학생과 교사, 외부전문가 모두 ‘지역민’에 포함된다. 더욱이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지역민이 아니라, 과거에 살았고 미래를 이끌어갈 후손들까지 지역민에 포함된다. 구획된 특정 범위를 넘어서 시공간의 차원이 연결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역민들이다.

     

    도민참여연구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 과연 무엇이 있고,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생활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 지킴이로 오랫동안 활동하시고 오랫동안 마을이장을 지내신 산성리의 이종화 어르신은 남한산성의 지역음식 문화와 족보, 유네스코 문화유산 선정 관련한 내용을 들려주셨다. 남한산성의 효종국은 송파에서 배타고 양반들에게 건네줬던 국내 최초의 배달음식이다. 민초들이 먹었던 건 된장 넣고, 나중에 고추장을 풀어서 끓인 토장국이다. 토장국은 금방 상하기 때문에 자주 끓여야 한다.

     

    불당리를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김종익 마을어르신은 성문밖학교 옆에서 논농사를 짓고 계신다. 이 어르신은 학생들에게 논농사 체험을 하게 배려해주시기도 했다. 30년 째 매일 일기를 쓰셨다는 어르신은 남한산성의 장승과 산신제, 꽃상여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장승 밑엔 ‘남한산성 3km’식으로 간단한 이정표가 있으며, 2년마다 오리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으로 제를 지낸다.

     

    성문밖학교 학생들은 직접 마을지도를 그리고 장승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사전조사로 문헌에서 장승의 의미와 유래를 알아보고, 직접 남한산성에 있는 장승을 찾아갔다. 학생들이 발견하고 기록한 바에 따르면, 남한산성의 장승 일부는 훼손돼 있는 상태다.

     

    성문밖학교 학생들은 입학하면서 남한산성이라는 낯선 공간을 접한다. 일부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청소년 시절의 기억을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학교는 단순히 교육이라는 기능적 역할보단 애착의 공간으로서 지역성과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남한산성의 지역문화를 알아보는 일은 대안적 교육 프로그램과 직결된다. 교육은 교육만으로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생활과 문화, 지역과 역사에 접목돼 있다.

     

    남한산성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안미애 저자는 성문밖학교로 직접 찾아와 강연을 해주셨다. 강연과 책에 따르면, 원래 남한산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한산, 주장산, 일장산, 청량산 등 다양하게 불렸던 이곳이다. 주장, 일장이라는 말은 밤보다 낮이 길다고 해서 붙여졌다. 또한 남한산성에 왜 그리 많은 닭백숙과 닭볶음탕 집이 많은지 에 대해, 닭은 소나 돼지에 비해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음식문화는 자자손손 이어져왔다.

     

    남한산성의 지역문화를 기록하고 알리는 일은 단지 지역을 홍보하는 차원이 아니다. 대안학교가 지역과 네트워크를 하고, 지역의 공동체성 복원을 위한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방법은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기록하며, 보존하는 일이다.

     

    내가 사는 곳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깨닫는 것에서부터 나를 알아가는 일이 시작될 수 있다. 나를 알면 우리라는 공동체에 자연스레 관심이 갈 것이고, 이 지점이 바로 지역문화 역사기록이 교육적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되는 부분이다.

     

    남한산성의 성곽과 건물들만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춥고 배고픈 겨울을 견뎌냈던 민초들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보존해야 할 역사·문화적 유산이다. 그 작업을 지역민들이 해낸다면 내재적 관점에서 더욱 잘 수행해낼 수 있을 것이다.


    * <광주시민저널> 제43호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