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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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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3. 28. 11:26 카테고리 없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교육은 진정한 서비스가 아니다

     

    남한산성 성문밖학교에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봄을 맞이하는 신입생들이 활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을 겪은 성문밖학교는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 차원에서 다름의 가능성을 꿈꾸는 학생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새 학기에 만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첫째, 질적으로 다른 영어 학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각 대안학교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성문밖학교는 원어민들이 가치와 문화 및 역사, 생활로서 영어를 주고받는다. 제주 강정 문제에 대한 노래를 하고, 한국의 정치문화 변동에 대해 스스럼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우리나라가 왜 분단이 되었는지 고찰하고, 미국에서 왜 총기 사건이 학교에서 발생했는지 알아본다. 대안학교에 대한 기대 중 한 축을 자리하는 건 외국어에 대한 높은 열망이다. 이 열망은 좀 복잡하다. 영어를 잘 해서 성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할 수도 있겠으나, 새로운 생각과 다름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고자 하는 바람이 함께 섞여 있다. 성문밖학교는 후자를 지향한다.


    둘째, 일반 학교에 대한 부적응 때문이다. ‘일반’이라는 말은 굉장히 획일적이다. 그래서 다름이 필요하다. 일반 학교에선 숨이 막힐 정도로 선행 학습과 경쟁이 일상화 해 있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미친 듯이 쳇바퀴를 돌린다. 대치동 사교육의 불야성은 꺼질 줄 모른다. 극단의 사교육 경쟁은 공허를 낳는다. 학생들은 공허에 숨이 막힌다. 한편, 부적응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생활면에서 부족하진 않지만 친구를 사귀거나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있다. 친구들이 공부만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들도 대안학교에 문을 두드린다.


    셋째, 학교 자체를 거부해 스스로 눈과 귀를 닫아버린 학생들도 있다. 보고 듣는 게 없으니 할 말이 없다. 가장 심각한 건 이 학생들이다. 헤어날 줄 모르는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침잠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학생들이다. 사실 학교에 대한 불만이라기 보단 가정 내에서 문제가 심각한 경우가 많다. 무엇을 해도 불만이 많아서 학교라는 틀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이들 역시 대안학교를 찾는다.

      

    우리나라, 특히 우리나라 교육은 정말 큰일이다. ‘왝 더 도그(Wag the dog)’라는 표현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꼬리는 규제이고 몸통은 교육의 본질이다. 규제는 각종 행정과 규약, 규정, 제도, 정책, 획일화 한 방향성 등으로 포장되어 교육을 흔들고 있다. 교육의 본질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바로 성장이다. 성장은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제될 수 없다.


    최근 한 국립도서관을 방문해서 예약한 장소를 이용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날 예약한 분은 부친상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서관 직원은 예약자가 방문해야만 장소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속으로 참 씁쓸해 했다. 이전에 공동 사용자들이 참석을 하면 이용 가능하다고 안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예약자와 함께 공동 사용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하지만 도서관 직원은 예약 장소를 이용하려면 나중에라도 예약자가 온다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공동 사용자가 참석하면 예약 장소를 사용 가능하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도서관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대리자로 서명을 하고 가까스로 예약 장소를 사용했다.


    도서관 해프닝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교육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된다. 정작 중요한 건 예약 장소의 사용임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사람보다 앞서 버린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 시스템은 네거티브 전략을 쓴다. 문제를 삼고 지적을 하며 패널티를 준다. 선진 문화 시스템을 2년 정도 체험해본 필자는 포지티브한 그들의 전략에 감동을 받았다. 규정은 규정대로 있되, 각각의 예외와 맥락을 고려한다. 그래서 선진 문화 시스템은 규정만 해도 수백페이지에 달한다. 달랑 한 두 장짜리 규정을 갖고 된다, 안 된다 따지는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학교가 변하고 있다. 수업마다 벽을 허물고, 학교 간 소통을 활성화 한다. 성문밖학교에서 교류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학교는 인문학버스, 과학버스 등을 통해 현장에서 프로젝트 중심으로 교육을 펼친다고 한다. 인종과 지역의 차이를 넘어 정말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언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온라인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비영리 온라인 교육 ‘칸아카데미’부터 교육의 혁신을 보여주는 ‘TED ed’ 등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교육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공교육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필자가 국내의 수학버스가 있다고 해서 알아보니 돈부터 얘기했다.


    요새 매우 흥미롭게 본 책 중에 『서비스 그레잇』(장정빈, 영인미디어, 2018.02)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고객이 기대하지 않았던 플러스원을 제공하는 엑스트라 마일이 중요하다. ▶ 놓치기 쉬운 마이크로 밸류를 채워 줌으로써 고객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이 기업에 몇 백 배의 효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신뢰에는 쌍방이 존재한다. 서비스는 결정적 순간의 총합이다. 규정이라는 한계를 넘어 홈런을 치는 순간 고객은 황홀경에 빠진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기업은 불만이나 클레임 처리 과정에서 고객의 기대를 뛰어 넘는 감동을 선물한다.


    교육은 분명히 서비스이다. 서비스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서비스가 아니라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하려는 차원에서 접근한다. 이런 식의 서비스는 절대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헌장을 외우고, 애국가를 합창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수능 시험으로 줄 세우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게 성장이다. 그럴 때 비로소 창의성이 함양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상이다.


    『서비스 그레잇』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학자 시어도어 레빗은 “드릴을 사가는 소비자는 드릴을 산 것이 아니라 그 드릴로 뚫을 구멍을 사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고객이 원하는 것은 제품 자체가 아니라 그 제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서비스, 즉 솔루션이라는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학생을 학교에 보내는 건 학교 자체가 필요해서는 아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서다.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은 원활한 교류의 솔루션이 필요하다. 혹은 편식하듯 편협한 사고를 가진 학생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상상의 솔루션이 요구된다. 내 자녀에게 필요한 걸 학교가 서비스로 제공해야만 진정한 교육이다. 학교라는 틀에서 솔루션이 그저 생길 리가 없다. 대안교육은 각 학생별로 필요한 솔루션이 집중할 수 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교육은 언제나 위기다. 공교육은 언제나 더욱 위기다.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많은 현장에서 교육의 붕괴를 탄식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우리 교육에서 창의적 융합 인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젠 대안교육이라는 몸통이 더욱 나설 차례다. 

    * <광주시민저널> 제48호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