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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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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12.01 11:49 분류없음

최근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 뱃속에서 플라스틱 생수병(500ml)이 발견됐다. 50cm 가량의 아귀는 채 다 소화시키지 못한 생수병을 품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토록 큰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다. 목재와 금속으로 둘러싸였던 우리의 과거는 이젠 플라스틱 제품들로 가득하다.


플라스틱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으며 ‘형태를 만든다’는 뜻을 지닌다. 초콜릿 하나하나를 감싼 포장지와 물티슈, 설거지용 세제, 어린이 장난감과 학생용 문구, 운동화와 겨울 코트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은 없다. 

플라스틱은 예술과 인간 사회를 발전시킨 긍정적 측면이 있다. 1869년 한 인쇄공은 상아였던 당구공을 셀룰로이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식물의 섬유소인 셀룰로오스를 원료로 한 것으로, 저렴하고 쉽게 형상을 만들었다. 셀룰로이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셀화에도 쓰여 예술 확산에 기여했다. 1884년에는 인조견 개발의 필요성을 느낀 화학자들이 희소한 누에 실크를 대체하기 위해 셀룰로오스를 원료로 레이온 섬유를 만들었다. 레이온은 누에 실크보다도 빛났고 아름다웠으며 염색이 쉬웠다. 

20세기에 들어 석유를 원료로 하는 페놀수지가 등장했다. 열에 강하여 조리도구 손잡이, 컴퓨터 키보드, 절연제 등에 쓰였다. 거미줄보다 가늘면서도 강철보다 강한 나일론은 1930년대에 등장했다. 이는 최초의 합성 섬유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사용 텐트와 낙하산에 쓰였다. 현재 고분자 연구는 항공 기체와 건축 재료에 적용될 정도로 다양한 범위에 포함된다. 플라스틱 의존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작게 부서지고, 파편화 된 플라스틱 조각들. 사진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해양 연구로 드러난 미세 플라스틱 오염

그러던 1971년 가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생물학자 에드 카펜터(Ed Carpenter)는 미국 바하마 제도 동쪽 앞바다를 항해하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엉겨 붙은 갈색의 모자반 해초 덩어리 가운데에 하얀 얼룩이 함께 떠다니고 있었다. 정체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사건으로 기록됐다. 왜냐하면 잘게 부서진 입자가 발견된 곳은 대서양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대륙에서조차 거의 550마일이나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플라스틱 문제는 불거지기 시작했다. 해안선에는 청량음료 병처럼 눈에 띄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악명 높은 GPGP(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에도 플라스틱 조각은 무수했다. 이들 플라스틱 제품은 햇빛을 받아 약해지고 바람과 파도에 맞아 파편화되고 있었다.


미세 플라스틱은 얼마나 축적돼 있으며, 어디서 왔으며, 어떤 식으로 이동하고 있을까. 미세 플라스틱 고분자 배열은 수만 가지여서 자연에서 탐지가 너무도 복잡했다. 수은이나 납 같은 오염 물질을 샘플링 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 적용돼야 했다. 그나마 플라스틱의 존재를 눈으로 관찰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해양이었다. 일회용 포장지로부터 나온 파편들은 거의 모든 해양 유역을 떠돌고 있었다. 해양 종의 뱃속과 북극해 얼음 속에도 파편들은 존재했는데 인간 적혈구 세포와 비슷한 크기인 약 11μm 직경이었다. 플라스틱 파편 가운데 일회용 포장지가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연구원 마크 브라운(Mark Browne)은 진주 담치로부터 혈액 샘플을 뽑아 말리고서 특수 현미경으로 살펴보던 중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담치의 혈액 세포 중간에 흐릿한 3차원 이미지로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작기에 동물의 기관에 들어가 손상을 줄 가능성이 컸다. 2008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의 생태 독성학자들은, 플라스틱 입자가 무해하게 몸체를 그냥 통과하지 않는다고 논문에 적었다. 자그마한 트로이 목마처럼 위험한 화학물질들을 품고서 체내로 이동하며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된다는 것이었다. 


미세 플라스틱이 얼마나 작은지 보여주는 이미지. 미세 플라스틱은 최대 연필의 지름인 50밀리미터(0,5cm)부터 나노 단위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위 이미지는 51cm, 13mm, 500μm, 500nm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나노미터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런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사진 =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강과 토양 생물의 먹이 사슬에 갇힌 입자 

해양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고체 폐기물을 조사하던 연구원들은 이것들이 1년 간 도시에서 나오는 양의 겨우 1%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나머지 99%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시료 채취는 접근이 쉬운 해양 표층수에서만 주로 이루어졌고, 표층수는 기상 조건과 물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 변하였다. 파편들은 박테리아 필름에 붙어 해저로 가라앉거나 해안선으로 모이는 등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였다. 

2013년까지 그 어떤 과학자도 호수에 플라스틱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해보지 않았다. 이제 연구원들은 전 세계 호수, 강, 민물 해변에 작은 파편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아주 깨끗해 보이는 물이나 주요 강줄기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몽골의 산속 호수에서도 플라스틱 파편은 존재했다.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 그레이트호(Great Lakes)의 경우 이곳의 미세 플라스틱 수준은 쓰레기로 가득한 대양 소용돌이 지역만큼이나 높았다. 

강과 호수는 폐수 처리장이나 도시지역에 더 가까이 위치하기에 해양의 것들보다 플라스틱 입자가 큰 편이었다. 플라스틱들은 육지에서부터 셀 수 없이 분해되며 해양으로 이동한다. 캐나다 온타리오대학의 퇴적지질학자 페트리샤 코코란(Patricia Corcoran)은 온타리오 템스 강의 퇴적물을 조사했다. 템스 강은 휴런 호수와 이리 호수 사이에 자리하며 세인트클레어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이곳의 미세 플라스틱 양의 대부분은 폐수 처리장에서 비롯됐으며, 일회용 포장지에서 분해된 조각들이 뒤를 이었다. 보기에는 깨끗한 강이지만 겨울철 홍수라도 나면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플라스틱들이 떠올랐다.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영양분이 풍부한 하수 침전물 찌꺼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들 찌꺼기 속에는 폐수로부터 걷어냈다고 여긴 미세 플라스틱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호주 한 농장의 경우 토양에 미세 플라스틱이 너무도 많아 지표가 번쩍거릴 정도였다. 유럽과 북미에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매년 거의 산 하나에 맞먹는 미세 플라스틱이 농장 토양에 전달된다. 토양의 미세 플라스틱은 오랫동안 흙에 남아 농작물과 지렁이 같은 작은 생물체에 들어가고, 토양의 성질을 바꾸거나 지하수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북태평양 환류의 난류 전갱어 몸 속에서 발견된 18 조각의 플라스틱. 사진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미세먼지처럼 공중을 떠다니는 플라스틱 입자

2014년 파리대학교의 레이치드 드리스(Rachid Dris) 연구팀은 학교 지붕에 세 달 간 설치해둔 깔때기를 살폈다. 깔때기에 모인 먼지 대부분은 합성섬유였다. 특정한 모양과 가벼움으로 인해 쉽게 바람을 탔던 터라 양은 예상보다 많았다. 하루에 수집되는 입자 수가 평방미터 당 118개에 달할 정도였다. 이들은 크게 5mm에서 작게는 100μm까지의 크기였다. 


토론토대 미세 플라스틱 연구자인 첼시 로크만(Chelsea Rochman)은 “이것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뿐 아니라 강과 호수, 농장, 토양, 여러 유기체에 숨어 있었다. 빽빽한 도시 지역과 시골 농지 그리고 북극해 대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나다 북극의 호수 퇴적물과 북극해 빙하 맨 위 눈에도 미세 플라스틱은 있었다. 이는 해양 바닥으로부터 와서 얼어붙은 미세 플라스틱들과는 달랐다. 


과학자들은 기계 센서를 통해 빙하 표면의 미세 플라스틱을 관찰했고 이것들이 나노 플라스틱으로 분해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원래 나노 플라스틱은 실내 실험실 오염의 주원인이었다. 하지만 환경에서 미세먼지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노 플라스틱을 격리할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숨겨진 위험 요소들을 밝힐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아마 해양과 토양 그리고 강이 생각보다 더 오염되어 있음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없는 삶은 어떨까


우리는 플라스틱 없는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까. 소위 숲에 사는 ‘자연인’조차 플라스틱 제품들을 사용한다. 플라스틱의 위험성을 깨달은 한 가족이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살아본 사례가 있다. 이 가족은 냇가의 넓적한 바위에서 나무 몽둥이로 옷을 내려치며 빨래를 하고, 합성 섬유가 아닌 식물 줄기로 만든 옷을 입고, 싸리자루로 집 청소를 하고, 땅을 파 흙으로 만든 독 안에 음식을 보관하는 등 문명과 멀어진 듯한 생활을 했다. 집과 가구는 흙과 목제로 바꾸고 식기 등은 금속으로 대체했다. 양치질의 경우 소금으로 치약을 대신하고 나무 칫솔대에 세정된 돼지털을 솔처럼 붙여 칫솔을 만들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행여 플라스틱을 두려워한 여러 사람이 ‘자연적’인 삶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수요를 맞출 자연의 재료는 한없이 부족하다. 자연에서 모든 물질을 취득하기에 오늘날 인구는 너무도 많다. ‘빨리빨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비닐 봉투 같은 합성물들은 필수가 된 상태였다. 예술품을 만들고 건물과 자동차를 만드는 데도 플라스틱은 필수였다. 누구건 돈만 있다면 플라스틱으로 편리한 생활을 선택할 자유도 생겼다. 이러한 인간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플라스틱 제품들은 사라질 기미가 없으며 오히려 새로이 변형되고 개발되고 있다.

​플라스틱이 주는 사회학적 가치도 중요하기에 생태계 위험만을 집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플라스틱의 가장 큰 단점을 알고 있다. 자연 분해되지 않고 소각할 경우 다이옥신이라는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이 모든 측면을 바탕으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대하는 시민과 기관 그리고 정부의 최선의 노력을 살펴봐야 할 때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earth-has-a-hidden-plastic-problem-mdash-scientists-are-hunting-it-down/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from-fish-to-humans-a-microplastic-invasion-may-be-taking-a-toll/


https://www.youtube.com/watch?v=agS_kdG7Wwg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술, 바퀴, 시계에서 플라스틱, 반도체, 컴퓨터에 이르기까지)』(조 지무쇼 저, 시그마북스, 2017.)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저, 류동수 역, 양철북, 2016.)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id=300058&Board=news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11.29 10:01 분류없음

당신 내면의 야생마를 길들이는 게 성공하는 길

[리뷰] 『아직도 생각 중이라고 말하지 마라』(박천웅, 시그니처, 2018.11.15.)

 

정말 오랜만에 내공이 느껴지는 책을 만났다. 바로 기업인 박천웅 씨의 『아직도 생각 중이라고 말하지 마라』이다. 교육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던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인재교육을 잘 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단순히 기업의 인재교육뿐만 아니라 학교와 미래를 위한 인재교육의 차원에서도 큰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일화가 있다. 정약용 선생은 사람이란 무릇 양손에 저울을 갖고 있다고 적었다. 한 손엔 옳음과 그름을 구분하는 잣대, 다른 손엔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 하는 잣대다. 가장 좋은 건 옳은 걸 추구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다. 가장 나쁜 건 그른 것을 추구하다가 해를 입는 것이다. 이 일화만으로도 저자의 생각을 잃어낼 수 있다.

 

책에는 오랜 기간 대기업에서 일했던 저자의 경험과 새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진 소회와 철학 등이 뼈저리게 담겨 있다. 저자 박천웅은 자신의 생각을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사람은 어제에서 시작하고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뛰면서 생각해야 한다.” 뛰면서 생각해야 한다. 나무는 가지의 끝에서 성장한다고 한다. 배수의 진을 치지 않으면 성장하기 힘들다.

 

행동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 뒤처진다. 남들은 죽어라 뛰고 있기 때문에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언제나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전에 했던 일이라 지금도 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면 위험하다. 박천웅 씨는 꿈만 꾸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노력을 안 하면서 바라는 게 많은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생각만 아무리 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생각만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저자는 번지점프를 뛰어야 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뛰기 전 걱정이 너무 많이 밤잠을 설쳤으나, 막상 뛰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열정을 증명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행동의 힘은 과연 얼마나큰가, 생각 그만하자

 

일반적으로 뛰어난 인재를 정의하기 힘들어 한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다. 뛰어난 인재란 “마음의 중심을 확고히 하여 자질구레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조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적었다. 나한테 없는 걸 연연해하지 않고, 이미 있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키워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저자 박천웅 씨는 강조한다. 자신한테 있는 것을 마주하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 더불어, 일이 주어졌을 때 어떤 태도를 갖느냐가 역시 중요하다. 박천웅 씨는 “태도는 과거의 도서관이며 현재의 대변인이고 미래의 예언가이다.”라고 말한다.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몽상가이다. 생각만 많으면 달라지는 건 없다. 성공을 추구하면서 너무 전략만 짜거나 생각만 지나치게 하면 안 된다. 단계를 갖고 목표와 비전에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성공만 따른다고 성공이 따라오는 게 아니다. 성공 하려면 성공에 따르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원인 규명은 자신을 위축시킬 뿐이다. 노자가 강조했듯, 내가 모른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초는 모른다는 걸 아는 것이다. 모른다는 걸 모르면 그건 병이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이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아서 성공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섰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나의 그릇을 알고, ‘몰입’하기 위해 그 그릇을 채워야 한다. 내 그릇을 채우기 위해선 채우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아야 한다. 전문가가 되려면 정말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나를 평가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사회는 공동체 사회이고 타인의 시선은 피해갈 수 없는 단계이다.

 

정말 공감이 가는 얘기 중 하나는 넘어지지 않는 법을 알려주기보다는 넘어진 다음에 어떻게 일어서는가를 가르쳐 주라는 것이다. 이 문단은 너무 좋아서 통째로 인용하고자 한다. 모든 교육자가 귀 기울어야 할 대목이다.

 

누구나 넘어지듯 누구나 각자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체류하든지 아니면 탈출하든지는 각자의 선택과 능력에 달렸지만.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 같은 것은 없다. 영화 같은 이야기로,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공통의 미션만이 존재한다.

밝은 빛을 향해 나갈 수 있는 힘은 경험을 통해서만 길러진다. 그 경험이 내 그릇의 크기 또한 키울 것이다. 때때로 스스로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서라도 거기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신이 당신 인생에서 패배를 맛보았다면 그 패배를 인정하도록 해보자. 그 패배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차이와 차별 역시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내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성공이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

 

톨스토이라는 대작가는 작품에 열중하기 위해 잡다한 것들과 자신을 차단했다. 박천웅 씨는 “톨스토이가 되고 싶다면 당신이라는 목장 밖에서 날 뛰고 있는 야생마부터 길들여라.”고 적었다. 비범함은 결국 평범함이 시도하는 지속적이고 극적인 변화의 총합이다.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웅대하게 잡으면 안 된다. 웅대한 목표에 매몰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면 그 얼마나 힘든가. 박천웅 씨는 모든 일의 결과라는 것은 사고방식의 열의와 능력을 곱한 것이라고 적었다.

 

교육의 차원에서 또한 흥미로웠던 건 공부와 일의 차이점을 설명한 대목이다. 공부와 일은 뭐가 다를까? 공부라는 건 과거 지향적이고, 약속을 잘 이행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일이라는 건 미래 지향적이고, 변동 속에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다.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일은 달라지고 성격도 재규정된다. 물론 공부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다만, 공부와 일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확실히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비판은 별 효과가 없다. 비판은 상대를 깎아내리는 일이다. 차라리 비평이면 모를까. 저자는 “꿀 한 방울이 쓸개즙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라고 적었다.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이 나온다. 기회라는 건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달아나기 쉽고, 경험이라는 건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못하며, 판단은 언제나 여러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나를 비롯해, 여전히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즉각 행동에 나서길 촉구한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11.22 20:54 분류없음
한때 국내 영어공용화론이 논쟁이 되었던 적이 있다. 이미 세계 시민사회 시대에 영어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영어가 특정 집단에 독점적으로 세습되고 교육되다 보니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 국민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논쟁이 펼쳐졌고 결국 영어공용화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에 대한 언어 이상의 고민이 늘 필요하다.

현재도 한국에선 영어로 대학을 가고, 영어로 직장을 구하고, 영어로 문화를 주도한다. 전 세계적으론 모든 콘텐츠가 유튜브로 몰리고, 영어를 알면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 강도와 독점력은 줄어들었지만 영어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이자 언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이미 영어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국영수 중심의 학과 편성에서 영어는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세계 시장을 석권했고, 학술의 모든 언어는 영어이다. 자국어로 연구해 노벨상을 탄 일본 역시 연구결과를 공개하기 위해선 영어 번역이 필요했다. 영어가 서구 중심의 언어이긴 하지만 소통의 도구이자 세계를 해석하는 창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 바벨탑을 세우는 단 하나의 언어가 꼭 있어야만 한다면, 굳이 영어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 영어는 단지 여러 언어 중 하나일 뿐이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지금도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영미권 나라들은 영어교육과 어학연수 등으로 관광 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심각하게 영어를 ‘잘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더욱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소위 발음 좋고 술술 막힘없이 말을 하니 원어민들이 정말 영어를 잘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경기도 광주의 기숙형 대안학교 성문밖학교엔 여러 명의 원어민들이 눈에 띈다. 미국에서 역사와 정치를 전공한 세스(Seth), 뉴질랜드 출신의 호탕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포나무(Ponamu), 미국인이지만 소탈한 청년으로 느껴지는 라일리(Reilly) 등. 이들은 당연히 모두 영어를 잘 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서투른 영어를 하더라도 잘 들어준다는 사실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어린 학생들의 말들은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원어민 선생님들은 참 잘 들어준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영어를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는 다른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그 실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언어에 대한 감각도 필요하고, 꾸준한 연습도 요구된다. 영어 스터디 그룹에서 영어를 학습한 적이 있는데, 재미교포 출신의 실력 좋은 친구는 매일 한 문단씩 외운다고 했다. 아니, 이미 영어를 원어민처럼 쓰는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 있으면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습 차원에서 영어 문단을 외운다고 했다. 영어를 잘 하는 이들은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탐구한다. 단지 발음만 좋은 게 아니다. 영어를 잘 하는 원어민들은 당연하지만 영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학습한다. 그게 일상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단어 apple만 하더라도 뜻이 변할 수 있다. 대화중에 기업 apple사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그 맥락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언급하며 apple을 인용한다면 사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만큼 언어를 안다는 건 역사와 문화, 정치와 사회, 예술과 철학을 모두 아우르는 일이다. 

토플 시험은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4개 영역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각 영역들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이 돼 있다. 말하기를 잘 하기 위해서 말하기 연습만 해선 안 된다. 잘 듣고,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읽어야 할 말이 많아지고, 쓸 거리가 늘어난다. 영어를 외국어로 학습해야 하는 입장에서 읽기는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하며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학습이다. 읽기가 멈추는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무식해보일 수 있으나 독해가 가장 중요하다.  

더불어 영어는 습관이다. 밥을 먹듯이 영어를 섭취(학습)하고, 소화시키면 된다. 때론 영어의 뜻이나 의미를 잊어버려도 된다. 그러다가 다시 필요해지면 그 영어(밥)를 찾아서 먹으면 된다. 밥은 매일 세 끼를 먹으며 포만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영어는 하루 세 번 이상은 학습하고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포식하면 안 좋듯이 영어도 한꺼번에 이루려면 몸이 힘들어진다.

지금껏 정말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왔다. 그 중에 영어를 정말 잘 한다고 느끼게 해준 이들은 모두 상대방의 말을 배려해서 들을 줄 알았다. 화자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은 영어를 못 하는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영어를 원어로 쓰는 그들의 몫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말인 영어, 특히 은어나 약어 등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영어를 ‘잘 한다’는 건 영어가 불러오는 언어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잘 듣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우리들은 새로운 문화와 변화를 읽어내면 그만일지 모른다.

* <광주시민저널> 제53호 교육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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