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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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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3. 26. 10:12 카테고리 없음


    유아들은 생후 18개월부터 4세까지 모방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기들은 부모의 표정을 따라 해야 보살핌을 받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모방은 사회성의 토대로서 조화와 결집을 위한 행위다. 지난해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 한 팀은 침팬지를 따라 하는 사람을 관찰한 바 있다. 이그노벨상은 하버드대 유머과학잡지에서 기발하거나 괴짜 연구를 한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인간의 행동 중 10% 정도는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침팬지를 모방했다. 물론 침팬지 역시 인간을 따라 했고,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가장 구체적인 행동은 하품이었다. 적의가 아니라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모방이다.


    최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공개된 연구에 따르면 말레이곰 역시 동료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따라 할 줄 안다. 말레이곰이 다른 말레이곰의 얼굴 표정을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따라 하는 건 처음 알려졌다. 연구진은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중간에 공백기를 좀 두고 총 2년간 말레이곰을 연구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서 은둔하는 곰이라 정평이 나 있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한다는 건 눈치가 빨라야 하는, 매우 미묘한 소통 과정이다. 인간과 고릴라 외에 얼굴 표정의 정확한 모방이 관찰된 건 흔치 않다. 고릴라가 정확히 상대 고릴라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할 줄 안다는 연구 결과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말레이곰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말레이곰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곰으로 잡식성이다. 특히 말레이곰은 각자의 생활반경이 20% 정도까지 중복됨에도 불구하고 교미 시즌 외에는 다른 어른 곰들과 교류가 거의 없다. 꿀을 좋아하고 동작이 느려 ‘꿀곰’ 혹은 ‘느림보곰’으로도 불리는 말레이곰은 120∼150cm의 키에 몸무게는 80kg까지 나간다. 말레이곰은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며,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돼 있다. 말레이곰 숫자는 산림 벌채와 밀렵, 농작물 보호를 위한 사살 등으로 줄고 있다. 어미곰이 죽는 경우, 새끼곰들은 중국에서 몇몇 의약품 용도를 위해 ‘담즙 곰’으로 사육된다. 말레이곰 어미들은 대개 2마리의 새끼를 돌본다. 어린 말레이곰들은 어미곰 곁에서 3개월 정도 보살핌을 받는다.

    연구진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놀이 세션에서 22마리(15마리는 암컷) 말레이곰의 얼굴 표정들을 코드화했다. 2∼12세의 말레이곰들은 말레이시아의 한 보호센터에서 지냈다. 이곳은 야생과 비슷할 정도로 커서 곰들이 상호작용을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에서 10초 정도 진행되는 372번의 교감놀이에 참여했다. 거친 놀이보단 몸으로 밀치고, 뒤에서 물거나 잡으면서 토닥거리고 도망가는 등 온화한 놀이 세션에 2배 이상 더 많이 참여했다. 이 온순한 놀이에서 곰들은 명확히 얼굴 표정 따라 하기를 보여주었다. 교감놀이에서 연구진은 분명하게 구별되는, 1초 동안 위쪽 앞니를 드러내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류했다. 관찰 결과, 말레이곰은 명백히 구별되는 두 가지 방식의 입 벌리기를 총 931회 보여주었다. 

    얼굴 표정을 모방하며 학습하고 소통한다고 해서 종의 우월성이 입증되는 건 아니다. 말레이곰 역시 미묘하지만 정확하게 대면 소통을 할 수 있다. 그 비율은 약 30%에서 100% 사이였다. 물론 반응이 없는 녀석도 있었다. 말레이곰은 야생에서 고립돼 살아가지만 놀랍도록 장난꾸러기다. 놀이를 하는 도중 적절한 교감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때론 싸움으로 변질된다. 

    복잡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춘 집단의 종들만이 그만큼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갖는다고 간주돼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보면 고립된 생활을 하는, 즉 단순한 사회적 시스템의 동물들 역시 정교한 소통 방식을 갖는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말레이곰은 상대방의 관심을 받을 경우 입을 벌리는 경향을 보였다. 입을 벌리는 행위는 호감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요컨대 복잡한 얼굴 표현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포유류에서 흔한 기질일 수 있다. 인간이 모를 뿐이다. 

    영장류나 개들은 서로를 모방하면서 생존법을 배운다. 미묘한 모방하기는 두 마리의 말레이곰이 서로 더 격한 놀이를 하거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신호를 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 역시 타인의 얼굴 표정을 정확하게 따라 하고, 이런 모방으로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런데 종종 타인의 시선과 표정은 화살이 돼 날아오기도 한다. 경멸과 비난의 표정은 그 얼굴을 바라보는 상대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결국 얼굴 표정의 신호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방의 유대로, 혹은 고통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3206623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3. 25. 16:52 카테고리 없음

    ‘사고력 + 자립력 + 연합력’이 창의 인재 키운다

    [서평] 『미래 인재로 키우는 미국식 자녀교육법 전 세계 교육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미래인재육성 프로젝트』(김종달, 책들의정원, 2019.03.05.)

     

    우리의 교육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 인공지능 및 컴퓨터의 확산에 따른 교육의 무용론이다. 둘째, 공교육의 제자리걸음이다. 셋째, 사교육의 횡행이다. 물론 각 부분마다 적절한 역할을 할 수도 있으나 현재 각 축은 삐거덕 거리고 있다. 그래서 저자 김종달 씨는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교육을 찾아 책을 썼다. 사교육에도 휩쓸리지 않고, 공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는 교육 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 세 가지는 ▲ 사고력 ▲ 자립력 ▲ 연합력 ▲ 메타인지이다. 이는 세계 각국 및 교육 관련 기구에서 강조하는 여러 교육 지표들과도 일맥상통한다고 김종달 씨는 말한다. ‘나’는 자립력, ‘사회’는 연합력, ‘사회와 나를 잇는 도구’는 사고력으로 표현했다.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성찰성은 메타인지로 인식 가능하다.

     

    사고력 + 자립력 + 연합력 그리고 메타인지

     

    현 시대에서 강조되고 있는 ‘창의성’만 하더라도, 독창성과 유용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독창성은 김종달 씨에 따르면, 자립력에 가깝다. 왜냐하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유용성은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는 연합력과 욕구를 해결하는 사고력의 공통분모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창의성은 창의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창의성 앞에 우선시 되는 건 바로 문제 해결능력이다. 문제 해결 역량이 없으면 창의성 역시 무용지물이다. 머리로만 나올 수 없는 게 바로 창의성이다. 저자는 창의성이 자립력과 연합력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강조했다.

     

    창의성에서만 사고력, 자립력, 연합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협업’과 ‘협상’에서도 이 세 가지는 요구된다. 책에선 “자신을 파악하는 자립력과 타인을 존중하는 연합력,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사고력 모두 필요하다”고 적었다. 물론 이런 역량들이 별개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엄마의 정보력과 집안의 재력이 교육이라고 했던 흥행 공식이 깨졌다는 지점이었다. 부모 세대들은 어떻게든 좋은 학원과 성적이면 명문대를 입학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카이스트나 컬럼비아대학의 조사를 보면, 일반고 학생들이 과학고, 영재고 학생들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실력이 향상되었고 한국인들은 유난히 졸업률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회복 탄력성이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교육은 멀리 봐야 한다.

     

    올리버 웬델 홈지는 “지적 교육의 주요한 부분은 사실의 습득이 아니라 습득한 것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머릿속에만 넣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저자 김종달 씨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 세대의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에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고 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자신을 반기는 아이들 때문에 살아가는 힘이 난다. 그 아이들을 위해 이제라도 우리의 교육은 바뀔 필요가 있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3. 23. 22:58 카테고리 없음

    배신의 충격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순간에 다가온다. 명분이 뒤집히는 것만큼 배신의 골을 깊게 하는 것은 없다. 과학자들이 과학적이지 못하거나, 인문학자들이 전혀 인문적이지 않은 사고나 행동을 보인다면 학문의 본질은 왜곡된다. 환경 단체, 그것도 동물들의 권리를 주창하는 곳에서 동물들의 안락사를 시행했다면 배신의 파장은 곱절이 된다. 

    동물권 단체 케어에서 내부고발은 그 자체가 충격이다. 케어의 박소연 대표에 대한 진실공방은 법적 잣대에 의해 어떤 결말이 나든 치유될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다. 박 대표가 말하는 ‘인도적 안락사’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 할까? 안락사 여부는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안락사가 동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동물을 보호해달라고 기부한 돈이 동물 안락사에 사용된다면 그 배신감은 곱절이 된다. 유기 동물과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은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케어 박소연 대표는 2015년 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구조한 동물 중 적어도 230마리를 안락사 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의 행위가 대량 살처분과 다른 인도적 안락사이며 병들고 양육이 어려운 동물들만 대상으로 안락사 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어는 절대 안락사를 하지 않는 보호소라는 명패를 달고 있어 파문이 더욱 컸다. 심지어 어리고 건강한 구조 동물들을 단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안락사 했다. 이를 숨긴 채 모금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온 국민은 분노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동물의 복지를 고려해 안락사 한 것이냐는 점이다. 과연 무엇이 ‘인도적’인가? 케어는 구조에만 열을 올리고 사후 보호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충분히 살 의지와 생명력이 넘치는 유기동물 그리고 구조 동물들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안락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을 죽여야 하는지와 같은 기준도 모호했다. 사람들은 유기동물들이 보호받고 동물권리가 확산되기를 바라며 안락사 없는 보호소 케어를 후원해왔다. 우리사회 유기 행위가 줄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케어 사건은 안락사 보다는 위선과 거짓말로 후원자와 국민을 기만했다는 점이 문제다.

     

    동물권 보호를 주창하는 단체 '케어'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케어의 불가피한 이유로 인도적 안락사를 시행했다. 사진 = 케어 홈페이지 소개

     

    안락사라기보단 위선과 거짓말의 향연

    “더는 이 동물을 돌보기가 힘들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이 말에는 반려동물의 끔찍한 다음 운명이 예고되어 있다.  

    동물에게도 죽음은 삶만큼이나 중요하다. 생태계 내에서 동물들은 죽음을 이해한다. 2010년 스털링대학교 연구원은 침팬지 소집단을 연구하던 중 기이한 행위를 목격했다. 한 마리가 죽어가던 순간 나머지 침팬지들이 몸단장을 시키더니 완전 죽었을 때는 갑자기 수컷 한 마리가 높은 곳으로 올라 펄쩍펄쩍 뛰어 다녔다. 그리고 양손을 모아 죽은 침팬지의 몸통을 두드려 댔다. 입을 들여다보거나 팔다리를 들어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침팬지들도 있었다. 침팬지들은 밤새 서성대며 모두 잠을 설쳤다. 회색기러기는 짝을 잃었을 경우 눈이 움푹 가라앉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의기소침해한다. 노랑부리까치는 동료가 죽었을 때 사체를 살짝 쪼아 확인을 하고 이후 풀을 조금 가져와 옆에 두어 묵념 후 날아간다. 

    죽음은 그 자체로 삶이 중단되는 일임과 동시에 삶의 기억이다. 어느 생물이건 이유 없이 또 잔인하게 죽고 싶지 않다. 동물들의 죽음 역시 동료에게 삶의 기억으로 남는다. 

     

    10마리의 개가 가스로 안락사 된 장면. 사진 = https://indyweek.com/news/northcarolina/animal-euthanasia-rules-languish-language
     

    인간의 손에 죽음이 통제된 반려동물들

    안락사는 점잖고 수월한 죽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얼핏 고통 받는 동물을 해방시켜주는 행위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하지만 동시에 폭넓은 살해 행위를 품은 불완전함도 담겨 있다. 집이나 안락사 센터처럼 스트레스를 덜 받는 장소에서 주인과 마지막을 함께하거나 안락사 되는 동물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물의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안락사의 동기 자체에 구분을 두지 않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이유 없는 잔인한 안락사가 곳곳에서 자행된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하는 동물은 없다. 반려동물들은 죽음을 선택할 능력이 없기에 이 경우 비자발적 안락사를 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하는데 개를 데려갈 수 없다거나, 아이를 낳아 고양이를 돌보기 힘들다는 등 편의에 따라 주인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수의사에게 데리고 가 안락사를 부탁한다. 만약 수의사들이 거부할 경우 버리거나 보호소로 넘긴다. 보호소에 넘겨진 동물들은 얼마간 연장된 목숨을 쥔 채로 새 주인을 기다린다. 하지만 새 보금자리를 얻지 못 할 경우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유기견은 거의 10만 마리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에 발생한 유기동물 수는 77,877마리로 이중 30.9%가 안락사, 15.9%는 자연사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버려지는 순간 죽게 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발표를 보면, 2017년도엔 10만2593마리의 유기·유실동물이 구조됐다. 이 중 안락사 되는 비율은 20.2%로 늘어나는 추세다. 제 주인에게 돌아가거나 분양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영국에서만 해도 여름 휴가철이면 반려동물을 버리고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반려동물 천국이라는 미국과 반려동물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랑스 역시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하다.
     

    인간의 안락사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안락사 역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고통을 줄여준다고 할 때, 과연 그 고통이 무엇인지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사진 = https://www.petmd.com/blogs/dailyvet/2010/february/cost_euthanasia-5520 


    은밀한 사업이 된 동물 안락사

    재산이 아닌 생명이 되어야 하는 약자들

    지금껏 전 세계 수많은 보호소와 쉼터에서 동물들은 이유도 모른 채 콘크리트 오븐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산화탄소를 마시며 죽었다. 미국 일리노이 주와 미시간 주, 노스캐롤라이나 주, 텍사스 주는 안락사를 위해 가스실을 아직도 사용한다. 가스실에서 동물이 죽기까지는 길게 30분 이상 걸린다. 수의사가 안락사를 집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재 우리 법률은 동물을 재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유 권리를 인간이 쥐고 있는 것이다. 동물에게서 생명과 자유를 빼앗는 일이 법률 속에 뿌리 깊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법이 정당한지 입증해보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  

    법제화 된 안락사는 케어 사건처럼 개인에게 아주 위험한 무기를 쥐어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시인 겸 극작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인간은 죽음을 뼛속까지 안다. 인간이 죽음을 창조했으므로.”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작은 권력이라도 갖는 순간 자신 외의 다른 이의 불행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이익만 된다면 칼을 들 정도다. 

    모든 안락사는 ‘동물에게 최선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평생 철창과 개집에서 살거나, 거리를 떠돌거나, 굶주리고 추위에 떨거나, 사고와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안락사 당하는 것이 과연 더 나은 건지를 말이다. 안락사가 동물의 입장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일까? 고통 받는 생명들을 위한 자비로운 행동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물 안락사는 동물들을 손쉽게 처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행위일 뿐이다. 

    동물은 자신들의 대변자를 원한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동물에 대한 법제도가 다시금 정립돼야 할 때다.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고 버려진 동물을 공동체가 함께 보살피겠다는 방향으로 말이다.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id=303435&Page=&Board=news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3. 19. 15:03 카테고리 없음

    너무 힘들 때 걷고, 또 걷자! 그러면 낫는다!

    [서평]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마음의 병을 앓은 정신과 의사가 힘든 인생들을 위해 쓴 치유 관계학)』(나쓰카리 이쿠코 지음, 홍성민 옮김, 공명, 2019.02.25.)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아온 정신과 의사가 있다. 바로 나쓰카리 이쿠코이다. 스스로 자해를 했고, 죽기 위해 몸부림쳤던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는 집에서 어머니의 이상 행동을 평생 동안 보아왔다. 어떻게 하면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답은 본인이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책 제목이 시사 하는 바는 크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이쿠코는 아버지를 포함해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극복해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이었다. 때론 큰 돈을 지불해야 했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무수히 많은 죽음을 목도한 끝에.

     

    의대생이던 저자는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호스피스 병동을 들르며 자신도 이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가까스로 느낀 것이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자는 정작 본인이 죽고 싶었는데, 죽음을 봐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미안해했다. 무거운 마음을 갖고 말이다. 사람의 버팀목이 결국 사람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한 의대 교수로부터 들었다던 말들을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죽을 사람, 나는 살 사람...이, 아니라 나도 언젠가 죽을 사람”, “‘당신은 환자, 나는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환자 가족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환자였던 셈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죽음을 원했던 정신과 의사, 죽음을 말하다

     

    죽음을 그토록 원했지만 죽음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속 시원하지도 않았다. 죽음은 가까운 사람이 영원히 다른 세계로 떠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그녀가 상상했던 죽음이란 죽음 이하도, 죽음 이상도 아니었다.

     

    그녀는 힘들 때면 자주 걸었다. 걷다보면 좋은 생각이 든다. 힘들 땐 정말 걸어보자. 저자의 말마따나 회복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걷는다는 건 시간을 번다는 뜻이다. 하루를 견뎌내는 강함이 중요하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다보면 그게 인생이 된다.

     

    의존증 환자들이 많다. 그들은 외롭고 자신감이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의존증 환자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상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하다. 놀랍다.

     

    이쿠코는 불행에도 샛길이 있다고 강조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행동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한 발자국 내디뎌본다.” 에필로그에서 그녀가 던진 외침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3. 15. 16:55 카테고리 없음



    전 세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 홍역 때문에 하루에 약 300명이 사망하고 있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홍역 환자가 발생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또 유럽과 미국에선 유아들이 유난히 많이 홍역에 걸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60명 이상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해외 유입인 것으로 추정된다. 

    홍역은 몇몇 국가에서 영영 사라진 질병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일부 부모는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는다. 집단의 면역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백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말, 홍역(Measles)과 볼거리(Mumps), 풍진(Rubella)을 뜻하는 이른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이 과학 학술지 ‘랜싯’에 실렸다. 당시 태어났던 유아들은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부모들에 의해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못했다. 과학에 대한 불신 혹은 배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전 세계 10대 보건 위협 중 하나로 백신 기피 현상을 꼽았다. 

    16일은 홍역 백신의 날이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홍역은 특히 면역체계가 약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어린이들을 사망이나 장애에 이르게 한다. MMR 백신은 안전하고, 접종자의 90∼95%가 효과를 본다. 홍역 예방 접종을 받지 않으면 90%가량이 홍역에 걸릴 수 있으며 폐렴, 설사, 중이염 등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때 홍역을 앓았다. 그때 정말 좋아했던 짜장면을 먹어도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 

    2017년 11만1000명이 홍역 때문에 사망했다. 대부분 5세 이하 어린이였다. 홍역 백신은 2000년과 2017년 전 세계 2210만 명의 아이를 죽음에서 구했다. 홍역의 첫 증상은 대개 고열이다. 홍역에 감염되면 10∼12일 새 눈이 붉어지고 발진이 생긴다. 홍역의 한자 ‘紅疫’은 좁쌀 같은 붉은 종기들이 생기는 전염병을 뜻한다. 홍역의 영어 단어는 고름, 물집을 뜻하는 중세 독일어 ‘masel’에서 파생됐다. 홍역은 주로 기침과 재채기 및 감염 부위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발생한다. 

    WHO는 2018년 전 세계적으로 홍역이 증가한 이유 중 30% 정도는 백신 기피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역은 집단 면역의 적정선이 무너지면 금세 확산 가능한 질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MMR 백신의 두 차례 무료 접종을 실시했다. 몸의 면역체계는 홍역 바이러스를 영원히 기억한다. 

    ‘백신(vaccine)’이란 말은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1749∼1823)로부터 유래했다. 그는 소의 발진성 피부질환인 우두(牛痘) 농포에서 고름을 짜 소년의 팔에 직접 주입하는 실험을 하며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천연두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인류를 절멸의 벼랑으로 몰았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런데 지금 백신에 대한 기피가 있듯 당시에도 우두접종법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제너의 방법은 입증되며 결국 많은 사람을 살렸다. 면역학의 아버지였던 제너는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백신이란 말을 고안해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난해 여름 로타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한 4개월 된 아이가 장이 말려들어가는 장중첩증과 장이 막히는 장폐색을 일으켰다며 백신 거부 운동의 확산에 대해 서술했다. 이 백신을 맞은 경우 10만 건당 1∼5번 정도 장폐색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은 로타 바이러스 자체에 의해 감염돼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이 백신과 부작용의 관계는 입증하기 쉽지 않다. 백신 거부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신 때문에 자식들이 심하게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다. 그들에겐 백신의 부작용이 과학인 셈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2017년 야외에서 놀던 아이가 사고로 이마가 찢어졌는데 파상풍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집에서 소독하고 상처를 꿰맸으나 6일 후 턱이 움츠러들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도 통제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파상풍 및 여타 백신을 맞은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중환자실을 비롯해 8주간이나 병원 신세를 지며 수억 원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의 부모는 이런 일을 겪고도 아이에게 백신 맞히는 것을 거부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감정의 호소 등에 휩싸여 백신 정책에 반감을 표하고 있다. 백신은 분명 과학이지만 백신의 유통과 보급, 기피와 거부엔 인간이 있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op_hty&fbm=1&ie=utf8&query=%EA%B7%BC%EA%B1%B0+%EC%97%86%EB%8A%94+%EB%B0%B1%EC%8B%A0+%EA%B1%B0%EB%B6%80%2C+%EC%95%84%EC%9D%B4%EA%B0%80+%EC%9C%84%ED%97%98%EC%97%90+%EC%B2%98%ED%95%A0+%EC%88%98%EB%8F%84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9. 2. 27. 13:52 카테고리 없음


    영화 ‘사바하’는 보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박 목사(이정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정나한(박정민)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이다. 정말 무서웠던 건 정나한이 원혼들에게 쫓기는 장면이다. 정나한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만졌던 것들에 충실했다. 내 살에 닿은 것들이 결국 학습과 행위, 기억으로 뭉쳐진다.

    그런데 최근 생물학 저널 ‘셀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세포들 역시 학습이 가능했다. 뇌의 촉각 담당 영역이 신경세포의 학습과 기억에도 관여했다. 저차원의 촉각이 고차원적인 기질과 활동의 학습으로 확장된 셈이다.

    우리는 단순 업무를 오랫동안 하다가 생활의 달인이 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기본적인 자극들이 반복되다 보면 고도의 학습과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 대학의 청소부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증명하거나, 비디오 가게 점원이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는 게 정말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차적인 감각 영역이 초기에 작업의 일부를 감당한다면 정보들의 연결과 연합은 더 빠르고 더 잘 학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STOP’ 표지가 빨간색이고 육각형 모양을 갖고 있다는 걸 배우면 실제로 사고 직전에 멈출 수 있다. ‘STOP’이란 단어를 읽어내기 훨씬 전에 말이다. 생존을 위해 이점이 되는 능력이란 걸 뇌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쥐의 체성(體性) 감각 피질 실험 결과 뇌의 촉각을 관할하는 영역이 학습의 보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체성 감각이란 일명 체감이라고도 한다. 내 피부가 느끼는 뜨거움이나 차가움, 따가움이나 부드러움, 관절의 움직임 혹은 공간적 위치 등을 알아채는 것이다. 체성 감각 피질은 대뇌의 중간 부분을 띠로 이루고 있다. 보상 학습은 뇌가 어떤 한 행동을 즐거운 성과로 결부시키도록 해주는 복잡한 형태의 강화 학습이다. 회사에서 온몸으로 고생한 대가로 월급을 받거나 밤샘 공부를 하며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게 일종의 보상 학습이다. 

    쥐는 어두운 방에서 수염으로 작은 막대기를 감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쥐가 막대기를 발견하면 보상으로 레버를 당겨 물을 먹게 했다. 연구진은 쥐의 수염이 막대기를 건드리면 체성감각 피질이 활성화한다는 걸 예상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런데 쥐가 보상으로 물을 먹었을 때도 이 부분이 활성화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건 막대기를 치우고 쥐에게 물을 줘도 체성감각 수상돌기가 활성화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감각 피질과 보상 학습의 정보 연계는 획득된 것이다. 그러나 수염으로 막대기를 감지하는 훈련을 받지 않은 쥐는 물이라는 보상을 줘도 신경 활동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신경세포는 세포체, 수상돌기, 축삭돌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신경세포는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수상돌기를 갖고 있다. 신경세포 하나의 수상돌기는 수천 개에 이르기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 이웃하는 뉴런들과 정보들을 연결하고 송수신 전극을 보내면서 말이다.

    보상 학습은 일련의 행동들을 좋은 기분의 감각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다. 보상 학습에 대한 이전 연구들은 뇌의 다양한 영역, 즉 복측(배 쪽)피개 영역이나 소뇌 등과 연관돼 있다는 걸 밝혀왔지만 감각 피질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감각 정보들은 축삭돌기를 통해 연합피질로 보내진다. 그 속도는 약 시속 160km이다. 연합피질에선 정보를 모으고 체계화한다. 뇌의 가장 정교한 전두엽에서 다음 단계의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레버를 당겨 물을 보상받으려 하려는 것이다. 뇌는 신속하게 정보들의 복잡한 연결을 시도한다.

    뇌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정보들을 연결하는 데에는 훌륭하지만 연결의 총합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는 그동안 알 수 없었다. 체성감각 피질의 수상돌기 층들은 마치 케이크처럼 6개로 구별되는 층을 이룬다. 체성감각 피질의 뉴런들은 5∼6층의 안쪽 깊이 있지만, 이 뉴런들의 수상돌기는 가장 바깥, 높은 쪽까지 뻗어나갔다. 수상돌기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는 밀림의 덮개처럼 체성감각 피질의 가장 높은 층을 채우고 있다. 이 수상돌기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연구진은 쥐를 훈련시켜 간단한 감각 관련 작업을 수행케 했다. 하지만 뇌의 보상 학습의 주동력인 화학물질 도파민이 체성감각 피질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도파민과 비슷한 어떤 신경조절물질이 관여하고 있는지 알아가고자 한다.

    주위에 단순하고 감각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지 말지어다. 그들의 뇌 속에선 감각의 신경세포들이 언젠가 창의적인 싹을 틔우기 위해 부지런히 학습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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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1. 2. 19:27 카테고리 없음

    영화 <아쿠아맨>(제임스 완 감독)이 인기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주제 의식 때문일 것이다. <아쿠아맨>은 잡종을 다룬다. 육지와 바다를 잇는 잡종이 왕을 넘어서 영웅이 된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잡종은 두 세계의 다리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인 잡종 '아쿠아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영화 이야기를 따르자면, 아틀란티스인들 역시 육지 위에서 살던 육지인이었다. 그러다 오만에 의해 자멸하면서 바다라는 이질적인 지역으로 갈라져갔다. 바다에 적응한 아틀란티스인이 우연히 육지의 인간과 사랑을 나누면서 잡종 ‘아쿠아맨’이 탄생한 것이다.


    자연에서 새로운 종은 어떻게 생겨날까? 종의 분화는 이지역성(異地域性)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 동물 또는 식물 개체군이 강이나 산맥 등에서 지리적으로 격리되면 가능하다. 분리된 두 그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격리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이된 유전적 차이를 축적한다. 마치 아틀란티스인과 육지인처럼 말이다. 결국 두 그룹의 DNA는 매우 달라져 두 개체군은 구분되는 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론 너무나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리적 격리가 일어났다고 해서 생식적 격리가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는 다양한 형태의 자연선택을 포함하는 힘들이 종 분화를 완성시킨다.


    최근 <분자생태학>에 공개된 논문에서 연구진은 짖는 원숭이(Howler monkey) 연구로 새로운 종 형성의 기작을 조사했다. 두 종의 짖는 원숭이의 상호교배 연구를 통해 새로운 종의 진화를 촉진하는 힘이 무엇인지 분석한 것이다. 연구결과를 보면 자연 선택의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종의 분화를 위해 생식적 격리를 할 때, 처음엔 다른 지역으로 막 퍼져나갔다가 나중엔 같은 지역에서 분기적 선택(divergent selection)을 한 것이다. 


    종 분화는 개체군들이 서로 갈라져 생식적으로 각각 분리될 때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이 과정에서 흔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생식적 격리가 종종 타 지역에 적응함으로써 분기되는 부산물로서만 여겨졌다. 하지만 동일 지역의 이종교배를 통해서도 종이 분화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영화 속 아틀란티스인과 육지인은 아쿠아맨이 태어나기 전까지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영화 초반에 보면, 아틀란티스 공주가 육지인 남자를 내팽개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해안가라는 동일 지역에서 공주와 인간 남자는 사랑하게 된다. 


    생식적 격리는 그 어떤 이종교배에도 불구하고, 한 종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순수 종의 개념과 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현대적 개념에서의 종이라는 건 완전한 생식적 격리를 요구하진 않는다. 자연에서 실제로 이종교배는 꽤 발견되었다. 20년에 걸친 DNA 샘플 분석 연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망토 짖는 원숭이와 검은 짖는 원숭이는 상호교배 하면서 잡종의 자손을 낳았다. 이 두 집단 간에 이종교배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종의 고유성과 관련한 생식적 격리는 불완전하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쿠아맨은 바다와 육지의 잡종으로 태어났다. 사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완전한 생식적 격리는 불가능하다

    망토 짓는 원숭이와 검은 짓는 원숭이는 약 3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1만 년 전 이내로 추측됨)까지 멕시코 남동부 타바스코주의 약 12마일 폭의 ‘하이브리드 존’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따로 살았다. 그간 하나의 종이라는 것은 다른 종으로부터 생식적으로 유리된 채, 실질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상호 교배하는 집단으로 규정돼 왔다. 우리나라 섬진강 고유의 민물고기인 줄종개가 동진강에 서식하던 점줄종개와 잡종을 이루어 잡종 무리가 번성한 사례도 있다. 줄종개와 점줄종개는 330만 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화해 다른 종이 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껏 진화 생물학자들은 두 집단 간 유전자 섞임의 장벽을 강화함으로써 자연 선택의 압력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즉, 두 집단을 완전한 생식적 격리로 몰아넣는 것이다. 자연 선택은 성공적으로 번식하는 유기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번식하지 못하면 외면 받는다. 따라서 자연 선택은 잡종에 반한다. 왜냐하면 잡종은 번식하기 전에 자주 죽거나 번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은 부적합 잡종의 형성을 막으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두 유기체 간 유전적 차이를 점진적으로 늘여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검은 짖는 원숭이와 망토 짖는 원숭이의 유전적 차이를 늘리는 것이다. 이로써 두 종의 원숭이는 짝짓기 하거나 잡종의 자손을 퍼뜨리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잡종의 출현을 막는 동안 자연 선택은 유전적 차이를 늘여감으로써 생식적 격리를 강화한다. 이 단계를 강화(reinforcement)라고 부른다. 이 강화 개념은 100년이나 지속되었지만 실증은 부족했다.

    연구진들은 유전 데이터에서 패턴을 확인했다. 그 결과 이종교배가 종들 간에 유전적 차이를 강화함으로써 종 분화 단계를 완성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음을 발견했다. 연구진들은 검증이 부족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강화 메커니즘을 포함해, 종들 간 차이를 유도하는 자연 선택의 신호를 발견했다. 이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왜냐하면 그간 강화에 대한 경험적 증거, 특히 유전적 증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연구진들은 자연적인 영장류 하이브리드 존을 활용하여 생식 격리와 관련된 장소의 동지역성(同地域性) 혹은 이지역성(異地域性)에 대한 자연 선택의 게놈 서열을 관찰했다.

    강화 개념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타바스코 하이브리드 존에 사는 검은 짖는 원숭이와 망토 짖는 원숭이의 DNA를 하이브리드 존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검은 짖는 원숭이와 망토 짖는 원숭이의 DNA와 비교했다. 다시 말해 생식적 격리와 관련 있을 거라 여겨지는 유전자 표지를 비교했다. 만약 강화 개념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어서, 자연선택이 요구하는 것처럼 이종교배를 좌절시키고 생식적 격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하려면, 하이브리드 존의 두 종 간 유전적 차이는 하이브리드 존 바깥의 양쪽에 각각 살고 있는 두 종 간 유전적 차이보다 커야 한다. 

    자연 선택에 반하여 잡종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이기에 종 간 생식적 격리가 강화되려면 더 큰 유전적 차이가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하이브리드 존에서 태어난 종들이 생식적 격리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분기되고 있기 때문에 짖는 원숭이 두 종이 공존하고 때론 교잡을 통해 상호 교배하는 하이브리드 존에서 강화는 종 분화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멕시코 타바스코의 젊은 수컷 짓는 원숭이. 생김새는 검은 짓는 원숭이처럼 보이지만, 이 원숭이는 망토 짓는 원숭이와 검은 짓는 원숭이의 잡종인 듯하다.

    사진 = https://phys.org/news/2018-12-howler-monkey-mechanisms-species-formation.html

     

    이종교배를 통해서도 가능한 종의 분화


    망토 짖는 원숭이와 검은 짖는 원숭이는 행동, 외모,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염색체 수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심지어 서식하고 있는 곳이 다르다. 하지만 멕시코 남동부의 타바스코 주에선 공존하고 상호교배 하면서 하이브리드 존을 만들었다. 연구진들은 망토 짓는 원숭이와 검정 짓는 원숭이 각각의 조상을 추적하기 위해 미토콘드리아와 핵 DNA 둘 다로부터, 유전자 표지(genetic markers)의 구분되는 형태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형태만으로 잡종을 식별하는 건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인간의 화석 기록에서도 이종교배의 가능성이 간과되었을 수 있다.

    짖는 원숭이가 인간 진화의 측면에서 이종교배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초기 인류가 다른 종들과 이종교배하여 혼종의 자손을 낳았을까? 최근 유전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들이 수만 년 전에 중동 지역에서 해부학적으로 현대 인류의 종들과 상호교배해서 유전자 풀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석의 기록은 이종교배를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종교배는 유전적으로 구별되는 개체군들 간 상호교배의 자손 번식으로 정의된다. 앞으로 ▲ 이종교배의 단계 ▲ 잡종 개체군들의 형태학적 표현을 좌우하는 요소 ▲ 종들 간 생식적 격리 정도를 더 알아가다 보면 인류의 진짜 민낯이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2. 25. 13:36 카테고리 없음


    빛, 아메바, 인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언제나 최단 경로를 택해 이동한다는 점이다. 혹은 그런 경향을 지닌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인간은 실수로 혹은 그저 최단 경로를 택하지 못하거나 안 할 수 있다. 내가 휴일에 도서관, 중국집, 영화관, 커피숍을 들르기로 했다면 동선을 고려해 갈 순서를 정해야 한다. 이를 계산과학에선 일명 ‘여행하는 외판원 문제(TSP·Traveling Sales Problem)’로 간주해 푼다. 즉, 동선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황색망사점균(Physarum polycephalum)’을 이용해 최단 거리 문제를 풀어 보고자 했다. 황색망사점균은 단일 세포로서 아메바처럼 자유자재로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점균류는 빛을 피해 먹이를 찾아간다. 그래서 황색망사점균은 지하철이나 도로의 연결, 심지어 미로를 푸는 데도 적용됐다. 그런데 최근 ‘영국 왕립 오픈 사이언스’엔 좀 더 진전된 실험 결과가 공개됐다. 젤리 형태의 황색망사점균이 최단 거리 찾는 문제가 복잡해져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그만큼 복잡해지지 않고 정중동(靜中動)의 미를 지킨 것이다.

    내가 들러야 하는 곳이 도서관, 식당, 영화관, 커피숍뿐만 아니라 헬스장, 이발소, 마트, 호프집으로 늘어난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4군데만 들러야 하면 한 출발점에서 갈 수 있는 방법은 3가지(2분의 3!)뿐이다. ‘!’는 계승(팩토리얼)이다. 8군데로 늘어나면 2520가지(2분의 7!)나 된다. 가야 할 곳이 늘어남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건 훨씬 더 늘어났다. 하지만 황색망사점균은 딱 2배의 시간만 더 들여 해법을 찾아냈다.

    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진 반면, 처리 시간은 단지 선형적으로만 증가했다. 모든 시스템은 언제나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황색망사점균은 분명 컴퓨터보다 느리다. 하지만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인 황색망사점균은 보통 컴퓨터의 처리 방법보다 더 나은 대안적 처리 방법을 제공했다. 물론 점균류가 직접 도시를 찾아다니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 도시들은 64개의 채널, 즉 8개 도시가 8개 채널을 갖고 있는 실험으로 대체했다. 세균 배양액 위 둥근 접시 위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황색망사점균은 세균 배양액에 접근해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빨아들이기 위해 각 채널들로 들어갔다. 여행하는 외판원 문제는 황색망사점균이 몸의 형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나의 몸이 하나의 채널로 들어갈 때, 다른 몸은 두 번째 채널로 들어가게 된다. 이 변형은 계속 이어진다. 황색망사점균이 최적의 방법으로 도시들에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빛을 사용했다. 황색망사점균는 빛을 싫어한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채널들이거나 이미 방문했던 채널들 혹은 몇몇 채널들을 동시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놀랍게도 가능한 배열의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황색망사점균은 최적화된 방법을 알아내는 데 기하급수적인 시간이 더 걸리지 않았다. 늘어난 경우의 수만큼 복잡해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최단 거리를 찾아내는 방법의 품질은 떨어지지 않았다. 검색 공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황색망사점균은 끊임없이 일정한 속도로 자신의 새로운 형태를 테스트했고, 동시에 시각적 피드백을 처리했다. 이 점을 컴퓨터가 배울 수 있다. 이번 실험에선 플레이트가 충분히 크지 않아서 8개의 채널만으로 실험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황색망사점균이 자연스레 안정적인 평균 상태를 추구하려는 성질을 볼 때, 수백 개의 도시들에서 최적의 방법을 계산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지어 아메바 TSP라 불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개발해 황색망사점균의 처리 패턴을 모방하고 있다.

    황색망사점균이 거의 정확한, 짧은 거리를 찾아내는 메커니즘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메바와 비슷한 황색망사점균에 영감을 받은 전기 회로는 변수가 많아지고 제약 조건이 늘어날 때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수리적 계산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한 다족보행 로봇의 알고리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기대했다.

    한편 최근 인간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미생물 수백만 종이 땅속 깊은 곳에서 발견됐다. 심층탄소관찰의 10년에 걸친 추적 끝에 지구의 바다 부피 거의 2배에 해당하는 곳에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작은 유기체, 잘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때론 어려운 문제들에 해답을 제공한다.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2. 22. 23:57 카테고리 없음

    ‘실력’만 강조하니 실력주의 패러독스 빠진다

    [리뷰] 『실력의 배신』(박남기, 쌤앤파커스, 2018.12.03)

     

    교육은 백년이 아니라 천년을 살리는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현재 정말 암울하다. 공교육은 땅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며,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 모두가 불행한 상황이다. 심지어 교육 관료들과 교육 정책가들, 사교육에 종사하는 자들마저 자괴감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읽은 『실력의 배신』은 과연 우리가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조타수 역할을 한다. 교육의 전문가이자, 광주교육대학교 총장까지 지낸 박남기 교수(광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를 옅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는 ‘실력주의’를 지향한다. 실력이 있으면 좋은 직장을 얻고 높은 급여를 받을 가능성이 많다. 공부를 잘 하고, 기술이 좋으면 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과연 그 ‘실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실력주의 패러독스’에 휩싸인다. 박남기 교수가 언급하는 실력주의 패러독스는 다음과 같다. 실력주의가 사회에서 인정되려면 실력주의가 지탱되는 조건, 즉 기회의 균등과 과정의 공정성이 견고해야 한다. 하지만 실력주의 사회가 득세하면 득세할수록 이 2가지 조건은 취약해진다.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실력의 측정 잣대를 더욱 치밀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비실력적 요인인 치맛바람이나 정보력, 집안의 재력 등 비실력적 요인이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느낀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으로만 보더라도 실력이라는 게 단지 개인의 노력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다. 톰 크루즈 같은 경우 난독증이 있지만 불굴의 노력으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게 단지 톰 크루즈의 하늘을 감동시키는 노력을 해서일까? 톰 크루즈는 대신 난독증을 극복할 만큼 좋은 기억력을 대신 부여 받았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난독증 환자 중 성공한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난독증을 극복할 수 있을 만한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물론 그들의 노력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난독증 환자의 80% 이상은 난독증만 나타날 뿐이라고 한다. 다른 능력은 주어지지 않아 평생 글을 못 읽고 사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왜 난독증을 극복하지 못하느냐고 비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력주의 패러독스, 실력 중요해지면 놓치는 것들

     

    실력이란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주어지는 게 절대 아니다. 실력이란 사회적 제도와 다른 사람들의 재능 기부, 타인의 배려 등 환경적 요인이 작용해야 한다. 박남기 교수는 “우리 사회와 세계가 실력주의 사회 신화를 신봉하는 바탕에는 ‘실력 형성 요인’에 대한 오해가 놓여 있다.”면서 “실력이란 부모나 다른 요인과 무관하게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이고,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만약 실력이라는 게 순수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실력에 따른 성공과 그에 따라오는 사회적 지위와 재화 배분은 당연하고 공평한 것이 된다. 심지어 성공한 이들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해도 안 될 것이다.

     

    실력이란 무엇일까? 『실력의 배신』에 따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광의의 측면에서의 실력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실력을 뜻할 때가 많다. 실력주의 사회에서 실력이란 거래 가능하고 수요가 존재하여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실력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받고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실력을 키워준다는 좋은 교육을 향한 염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서 부나방처럼 비싸더라도, 불공정하더라도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개인의 실력은 개인만의 결과는 아니다. 김연아만 하더라도 부모의 도움과 좋은 스승이라는 외부 인프라가 있었다. 박남기 교수는 『그릿』(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를 강조하는 책)에서 중요시되는 개인의 집념이라는 게 결국은 유전자나 경험(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개인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라온 배경과 환경이 더욱 큰 작용을 한 것이다. 따라서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사람들이 단지 자신들의 자유의지만으로 성공했다고 치부하거나 미화하면 안 된다. 그건 착각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성공한 사람들은 사회에 기부르르 많이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의 역할은 자기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룬 성공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와 배경 속에서 이룬 성공이라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성공은 실력에 더불어 개인의 특성, 외부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개인의 성공은 개인만의 노력이 아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세계. 그래서 나타나는 것들이 바로 ▲ 대입 전쟁 ▲ 교육 대물림 ▲ 사교육비 과다지출 ▲ 학생들의 행복도 저하 ▲ 학교 폭력 증가 등이다. 사회 문제는 교육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실력주의 사회의 그림자이다. 정말 완전한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가족과 공동체도 필요 없어질 것이다. 실력에 따라 재화와 지위가 분배 가능하다. 박남기 교수는 실력주의 사회가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는 건 ‘신실력주의’를 지향함으로써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신실력주의는 실력과 대학 및 작업 배분 사이의 연결 고리는 유지하더라도, 직업과 보상의 차원에서의 연결 고리는 줄여나가는 사회다. 박 교수가 구체적인 지향점으로 삼는 건 유럽형 복지국가와 교육 체계이다.

     

    여기 『실력의 배신』의 핵심을 드러내는 한 문장이 있다. “아이가 타고난 능력은 씨앗이고, 가정환경은 씨앗이 자라는 토양이며, 부모는 씨앗을 기르는 농부이고, 실력이라고 하는 것은 씨앗이 성장하여 이룬 결실이다.” 씨앗은 분명 성장해야 하고, 성장을 위해선 토양이 중요하다. 허나, 그 성장을 위해 땀을 흘리는 농부의 숨결이 없으면 성장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과연 어디를 향해야 할까? 실력이 중요하지만 그 실력을 키우기 위한 출발선의 공정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호는 좌초되고 말 것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12. 21. 20:55 카테고리 없음


    1956년 미국 프린스턴대 조지 밀러 교수는 ‘마법의 숫자 7, ±2’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5개에서 9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송금할 때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단번에 외우지 못하는 건 인간의 작업 기억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밀러 교수의 주장은 어떤 내용을 어느 시점에 외우는지와 일반화라는 측면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다만, 좀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의미 있는 기본 단위를 ‘덩어리(chunking)’로 기억하고 배열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창의적 활동의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구조화하는 능력이 정말 있는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그냥 기본 정보들을 연결하는 게 훨씬 쉬운 설명이었다. 정보들을 위계화하고 배열하는 능력이 어떤 활동인지와 무관하게 별도로 존재하는가? 그런데 최근 생명과학 온라인 저널 ‘e-라이프’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뇌파(뇌전도·EEG)를 이용해 그런 제어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특히 탁월한 작업 기억 능력은 관념적인 정보들을 활용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잘 치는 이들은 박자나 기호들의 규칙, 음표의 조합 등 기본 요소를 하위 단위로 잘 묶어서 끄집어냈다. 노래하거나 춤을 추고 혹은 프로그래밍 등을 하려면 우선 기교의 기본 요소들을 불러내 창의적인 방법으로 정렬하고 재조합해야 한다. 기본 요소들은 응축된 개념으로서 재현 혹은 표상 단계를 거쳐 숙련된 작업으로 나아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과학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기계가 대신할 테니 골치 아픈 교육이 필요하겠느냐는 강한 주장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 오히려 거꾸로 수학·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개념들을 구조화하고 재배치하는 데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연구팀은 뇌전도의 전기적 활성과 진동 패턴들을 측정했다. 이로써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달리 시간적 제약과 다른 요인들이 섞이는 가능성을 배제하며, 뇌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구체적인 모습들을 포착했다. 실험 참가자 88명은 두피에 전극을 달고 복잡하고 순차적인 행동 양식을 수행했다. 이들에게 45도, 90도, 135도 방향의 선분 총 9개가 주어졌다. 3개의 선분이 순차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묶였고, 3개의 덩어리가 정렬되었다. 각 덩어리에서 선분이 배열될 수 있는 방법은 3 곱하기 2로 6가지인데 중복이 허용되므로 6 곱하기 6 곱하기 6, 다시 각 덩어리가 배열되는 방법도 3 곱하기 2로 6가지이므로 경우의 수는 1296가지이다. 다만, 각 덩어리 내 선분들은 언제나 45도, 90도, 135도 방향이므로 실제로 나타나는 건 216가지뿐이다.

    이제 피실험자들에게 각 덩어리와 선분의 배열을 기억하게 하고 테스트했다. 이때마다 뇌전도는 진동 패턴들을 나타냈다. 뇌전도에서 알파 영역대(8∼12Hz)는 기본 요소들을 기호화해 불러낼 때, 세타 영역대(4∼7Hz)는 그 기본 요소들이 정렬될 때 나타났다. 이로써 어떤 기본 요소들이, 어느 지점에서 덩어리로 묶여, 어떤 작업들을 수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친다면 전체 악보에서 어느 마디, 어떤 음표를 연주하고 있는지 뇌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즉, 순간순간 기본 요소들의 덩어리를 지정(addressing)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좀 더 추상적인 수준의 강한 뇌전도 패턴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즉, 복잡하고 연속적인 작업들을 수행해내는 걸 힘들어했다. 결국 작업 기억 능력이 탁월해야 뇌의 현재 특정 영역이 활성화했다. 한마디로, 어느 작업이든 우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며, 종합하는 게 필요했던 셈이다. 뇌가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기억하려면 추상적 재현 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당연하겠지만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 수학·과학이야말로 고도의 추상적 논리와 현상에 대한 분석 및 종합적 사고 능력을 배양해주는 학문이다. 연구진은 이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순차적 지정 시스템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창의성은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건 바로 그 영역에서 기본이 얼마만큼 충실한가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으면 작업 기억 능력은 분명 배가될 것이다.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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