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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청소년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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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3. 22. 15:59 카테고리 없음

    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2017.10)을 보았다. 병자호란과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치욕적 역사, 두 충신의 날선 대립, 민초들의 고달픈 삶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삼궤구고두는 인조가 청의 황제 칸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조아렸던 굴욕이다. 청의 황제는 삼전도비를 세워 조선의 굴욕을 영원히 기억하게 했다. 삼전도비는 송파 석촌호숫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핵심은 실리를 추구했던 최명길과 명분에 목숨을 건 김상헌의 대립이었다. 명분을 살려서 청에게 궤멸할 인가, 아니면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참아가며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두 충신의 한숨과 고민이 이곳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내가 영화에서 주목한 건 배우 고 수가 연기한 ‘서날쇠’라는 인물이다. 전쟁에 부인과 딸을 잃고 남한산성에 들어와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그다. 서날쇠는 남한산성에 살았던 민초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서날쇠는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양반네들을 믿지 않는다던 서날쇠의 한 맺힌 울부짖음은 남한산성에 살던 지역민들의 생채기였을 것이다. 만약 남한산성에 살던 지역민들의 삶이 더 자세히 기록돼 있고 보존되었다면 어땠을까? 지역문화와 역사를 외부의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민들이 직접 찾아서 알렸다면 서날쇠는 허구가 아니라 김상헌과 최명길처럼 실존했던 인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줬던 서날쇠는 남한산성에 살았던 이름 없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성문밖학교 교사들이 주축으로 된 남한산청소년교육연구회에서는 2017년 제1차 경기도 따복공동체 도민참여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약 4개월가량 추진한 연구의 주제는 ‘남한산성면 지역공동체 문화적 자산에 대한 현황조사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지역도민들과 학생들이 참여하여 지역문화의 현황을 파악하고 조사했다. 남한산성에 어떤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이 있는지 지역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지역민이라 함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지역에 함께 생활하고 그 공간을 점유하는 이들 모두 지역민이다. 지역민과 지역성은 넓은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 남한산성에 관심이 있고, 연구하는 학생과 교사, 외부전문가 모두 ‘지역민’에 포함된다. 더욱이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지역민이 아니라, 과거에 살았고 미래를 이끌어갈 후손들까지 지역민에 포함된다. 구획된 특정 범위를 넘어서 시공간의 차원이 연결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역민들이다.

     

    도민참여연구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 과연 무엇이 있고,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생활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 지킴이로 오랫동안 활동하시고 오랫동안 마을이장을 지내신 산성리의 이종화 어르신은 남한산성의 지역음식 문화와 족보, 유네스코 문화유산 선정 관련한 내용을 들려주셨다. 남한산성의 효종국은 송파에서 배타고 양반들에게 건네줬던 국내 최초의 배달음식이다. 민초들이 먹었던 건 된장 넣고, 나중에 고추장을 풀어서 끓인 토장국이다. 토장국은 금방 상하기 때문에 자주 끓여야 한다.

     

    불당리를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김종익 마을어르신은 성문밖학교 옆에서 논농사를 짓고 계신다. 이 어르신은 학생들에게 논농사 체험을 하게 배려해주시기도 했다. 30년 째 매일 일기를 쓰셨다는 어르신은 남한산성의 장승과 산신제, 꽃상여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장승 밑엔 ‘남한산성 3km’식으로 간단한 이정표가 있으며, 2년마다 오리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으로 제를 지낸다.

     

    성문밖학교 학생들은 직접 마을지도를 그리고 장승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사전조사로 문헌에서 장승의 의미와 유래를 알아보고, 직접 남한산성에 있는 장승을 찾아갔다. 학생들이 발견하고 기록한 바에 따르면, 남한산성의 장승 일부는 훼손돼 있는 상태다.

     

    성문밖학교 학생들은 입학하면서 남한산성이라는 낯선 공간을 접한다. 일부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청소년 시절의 기억을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학교는 단순히 교육이라는 기능적 역할보단 애착의 공간으로서 지역성과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남한산성의 지역문화를 알아보는 일은 대안적 교육 프로그램과 직결된다. 교육은 교육만으로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생활과 문화, 지역과 역사에 접목돼 있다.

     

    남한산성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안미애 저자는 성문밖학교로 직접 찾아와 강연을 해주셨다. 강연과 책에 따르면, 원래 남한산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한산, 주장산, 일장산, 청량산 등 다양하게 불렸던 이곳이다. 주장, 일장이라는 말은 밤보다 낮이 길다고 해서 붙여졌다. 또한 남한산성에 왜 그리 많은 닭백숙과 닭볶음탕 집이 많은지 에 대해, 닭은 소나 돼지에 비해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음식문화는 자자손손 이어져왔다.

     

    남한산성의 지역문화를 기록하고 알리는 일은 단지 지역을 홍보하는 차원이 아니다. 대안학교가 지역과 네트워크를 하고, 지역의 공동체성 복원을 위한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방법은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기록하며, 보존하는 일이다.

     

    내가 사는 곳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깨닫는 것에서부터 나를 알아가는 일이 시작될 수 있다. 나를 알면 우리라는 공동체에 자연스레 관심이 갈 것이고, 이 지점이 바로 지역문화 역사기록이 교육적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되는 부분이다.

     

    남한산성의 성곽과 건물들만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춥고 배고픈 겨울을 견뎌냈던 민초들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보존해야 할 역사·문화적 유산이다. 그 작업을 지역민들이 해낸다면 내재적 관점에서 더욱 잘 수행해낼 수 있을 것이다.


    * <광주시민저널> 제43호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8. 3. 22. 15:57 카테고리 없음

    대안학교에서 일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대학원 시절 때부터였다. 가장 순수하게 느껴진 학문의 전당조차 이전투구로 일그러져 있었다.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며 더욱 좌절감을 느꼈다.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직장 문화는 창의성을 죽이는 방향으로 구조화 되어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총체적 난국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이 존중받고 공부가 즐거워지는 장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남한산성 자락에 위치한 성문밖학교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대안교육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이념형 학교와 재적응을 위한 훈련형 학교이다. 이 두 바퀴 아래 대안학교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래서 매일이 출발이다. 학생 선발과 재정적 자립, 특색 있는 교육커리큘럼, 학부모와 소통, 교사들의 성장, 대안적 진로교육 모색 등 운영 자체가 모험이다. 위기의식이 없으면 대안교육은 스스로 설 기회를 잃는다. 거꾸로 생각하면 공교육에 비해 대안교육은 더욱 자율적이고 그만큼 책임을 진다. 유연하지만 오히려 긴장감은 더 강하다.

     

    성문밖학교는 대안교육의 돌파구로 교육·문화 차원의 공모사업을 통해 지역과 연계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교육 네트워크를 마련해 지역 기반 없는 대안학교, 대안 없는 마을공동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지역은 대안교육을 필요로 하고, 대안학교는 지역을 토대로 한다. 성문밖학교는 자연과 더불어 학생들의 창의성을 함양하기 위한 문화·예술 창작 활동에 주안점을 둔다. 한 마디로 생태와 문화적 차원의 운동이다. 그 가운데 영어 원어민 선생님들과 함께 질적으로 차별화 된 언어와 문화 학습에 주력한다. 언어능력은 언어문화 속에서 꽃피운다. 건강한 생태와 색다른 문화·예술이 만나 씨앗은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다.

     

    성문밖학교에서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인문다큐’이다. 인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나를 깨닫고 주위와 어울리며, 언젠가는 필요한 아름다운 맺음을 거둔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맺음도 같은 무게로 소중하다. 제대로 끝맺을 줄 알아야 아름다운 사람이다. 인문다큐를 위해 미디어에 주력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매야 보배이듯, 자신의 생각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습을 엮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꾸준한 독서와 토론이 요구된다. 읽기만 하고 생각할 줄 모르면 위태롭다. 생각만 하고 읽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학생이 찾아가는 경기 꿈의 학교의 경우 남한산성면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전문강사로 나서고 있다. 학생들은 자연을 배우고 아끼기 위해 직접 생활 물품을 협업해가며 만들고 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과목(도예, 목공, 염색물공예, 요리, 산골마을 체험 등)을 선택해 관심을 더욱 높였다.

     

    특히 남한산성면 산성리, 검복리, 불당리 등의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경기 꿈의 학교는 마을교육공동체의 토대가 된다. 지역주민, 학생들과 교사들이 생태 속에서 어우러져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정감을 배운다. 들국화의 씨앗 하나를 보더라도 세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다. 내 주변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는 대안교육의 시작이다.

     

    미디어 창작을 위한 산메주공동체(산성에서 메가폰 잡는 주민들의 모임)는 마을공동체와 함께 남한산성 내 산골영화제를 마련한다. 또한 마을주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과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지역의 문화와 삶의 문제를 인문다큐 형식으로 담아내고 공유하며 토론한다. 과연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변화가 필요하며,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 하는지 소통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와 제주 구럼비 해안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영어 선생님이자 뮤지션 미스터 세스, 하천의 난개발로 인해 민물고기가 어떻게 고통 받고 있는지 연구하는 성무성 대학생, 역사와 과학에 큰 관심을 갖고 언제나 자신의 꿈을 당당히 발표하는 태원 학생 등의 모습을 카메라는 담아낸다.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바로 대안교육이다.

     

    아울러, 성문밖학교는 자연과 사람을 만나는 청소년 캠핑 프로그램 '청소년 월든을 만나다'를 진행하고 있다. 자연에서 야영생활 하는 능력을 갖추고, 청소년들 간 협동하는 생활습관을 진작하며, 문화, 예술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간다. 광주지역 청소년들 중 월든 평화캠프에 함께 하고자 하는 학생 30명이 체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체험은 자기성장기록 작성, 응급처치, 남한산성 옛길 탐사, 응급처치 실습, 숲속 조류 생태환경, 좋은 관계 맺기, 시와 수필을 통한 사유, 사진과 영상으로 표현하기 등이 있다.

     

    남한산성 지역유산은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대안적 교육이 필요한지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서민들의 노고와 좋은 풍습은 꾸준히 지키고 가꾸고 기록해야 할 부분이다. 따라서 지역과 마을공동체를 거점으로 문화·예술의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대안교육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역성(locality)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 안에 있는 학생들은 마중물로서 더 풍성한 잎사귀를 드리울 것이다.

     

    한편, 대안교육이라는 말은 사실 구체적이지 않다. 열려 있다는 건 다양성을 내포하지만 중심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마을공동체의 힘을 복원하고 마을교육의 상을 회복하는 일이 지역성을 드높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세계의 문화시민이 된다는 건 내 지역과 마을을 기반으로 한다.

     

    철학자 니체는 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흔히 열매만 바라본다. 열매만 있다면 나무는 지속해서 뿌리내리지 못한다. 성장하기 위해서, 더 멀리 뻗어나가기 위해서 씨앗이 중요하다. 씨앗은 대안교육이다. 성문밖학교에서 펼쳐지는 지역연계의 대안교육은 함께 하고 홀로 설 수 있는, 건강한 씨앗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경기도의 여러 기관들이 함께 이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 앞으로 총 10회에 걸쳐 대안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경험으로 교육에세이를 작성하려고 합니다. 대안교육, 더 나아가 교육철학을 배운다는 측면에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좋은 제안과 지면 허락을 해주신 광주시민저널 편집국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 <광주시민저널> 제42호 (2017년 11월 1일-11월 15일)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
    2017. 10. 16. 19:55 카테고리 없음
    2014년 서울 은평구 공영차고지 관리동 옥상에 설치한 태양과바람 2호기.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 제공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앞바다. 배를 타고 10분쯤 달려가면, 20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나란히 줄지어 허공을 가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그중 10기는 코펜하겐 시민들이 자력으로 세워 운영하는 발전기다.

    “시민 조합원들이 1억7500만크로네(약 250억원)를 출자해 미델그루넨(Middelgrunden)이라는 풍력발전 협동조합을 세웠지요. 호기심 많고 에너지 감수성 높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열어 조합원으로 참여했고요. 설계사이거나 전기 전문가인 조합원들의 재능 기부로 건설비도 많이 절감할 수 있었어요.”

    ‘에너지 농사’ , 같이 지으실래요?

    2011년 기자를 안내한 미델그루넨 협동조합의 스테판 나에프 이사는 이 회사에서 무보수로 일하고 있었다. 미델그루넨의 풍력발전기는 코펜하겐 전기의 4%를 생산해 4만 가구 이상에게 전력을 공급한다고 했다. “수익성이 낮은데도 귀한 돈을 출자한 조합원들한테 그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알리고 공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는 2년마다 조합원을 초청하는 신고리 홈커밍데이를 엽니다. 발전기 꼭대기의 탁 트인 전망대에서 조합원들이 멋진 잔치판을 벌이지요. 물론 출자 배당도 하고요.”

    유럽 각국에선 협동조합이 에너지 전환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에너지 시민’의 참여를 조직하고 자력으로 초기 자금을 조달해 지속 가능한 발전 사업을 구축하는 데 효과적인 기업 형태이기 때문이다. 발전 사업으로 인한 이익이 특정 대기업이 아니라 주민 공동의 몫으로 귀속된다는 점도 에너지협동조합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독일에선 2010년 270개이던 재생에너지협동조합이 현재 850개 이상으로 급증했고, 이미 원전 1기와 맞먹는 총 1G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에너지 농사, 같이 지으실래요?’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역 입구의 은평구 사회적경제허브센터 3층. 사무실로 들어서는 현관 벽에는 에너지협동조합의 조합원을 모집하는 산뜻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옥상마다 발전소가 지어진다면? 100개소에 12년간 30억!!!” “그 수익금으로 동네에 착한 일자리를 만들고, 탈핵과 에너지전환 활동을 펼치고….” 이런 취지에 동감하는 은평구 주민 조합원들이 10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냈고, ‘태양과 바람’이라는 예쁜 이름도 지었다. 4년여 사이 조합원은 290여 명으로 늘어났고, 총출자액은 2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3월4일 정기총회에선 사상 첫 조합원 배당도 실시했다. 출자액의 3%를 현금으로 지급했다. “이익을 냈다고 배당을 해주더군요. 은행 금리보다 좀 높게요. 아, 햇빛을 모으면 전기가 되고 돈이 되는구나, 돈 많은 기업이 아니어도 시민들이 조금씩 힘을 모으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실감했습니다.” 은평구 구산동 주민 박지현(45)씨는 “앞으로도 여유가 생기면 은행 말고 협동조합에 적금 들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은 설립 이듬해인 2014년 은평 공영차고지 정비동 옥상에 각 50kW 규모의 햇빛(태양광)발전기인 태양과바람 1호기와 2호기를 세웠다. 2015년엔 난지물재생센터 유입펌프장 옥상에 100kW의 태양과바람 3호기를, 지난해엔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옥상에 90kW의 태양과바람 4호기를 설치했다. 이들은 대략 300kW의 발전설비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올해부터 상근 직원도 2명으로 늘렸다.

    “햇빛 모으면 전기도 되고 돈도 돼요”

    2016년 볕 좋은 봄날, 에너지협동조합 조합원 가족들이 태양과바람 3호기로 즐거운 소풍을 다녀왔다. 태양과바람 에너지협동조합 제공

    민성환 이사장은 “발전 용량이 조금씩 커지면서 kW당 200만원에 이르던 시설 투자비를 150만~170만원대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약간 이익을 냈는데, 큰마음 먹고 배당을 실시하고 상근 직원도 1명 늘렸어요. 조합원 다수가 에너지 전환에 일조한다는 마음이 강한 분들이라 배당 요구가 크진 않아요. 그래도 에너지협동조합이 사업체로서 굴러가는구나, 조합원들이 확인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지요. 지역 일자리도 창출하고요.” 그는 “은평 지역은 협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편이라 열성 조합원이 많다. 적금을 깨서 1천만원 출자한 조합원도 있고 100만원대 고액 출자자도 다수다”라고 말했다. 태양과바람 조합원들은 지난해 5월 태양과바람 3호기 등을 탐방하는 가족 소풍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에도 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이는 협동조합이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참사가 위기의식을 고조시켰고, 2012년 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이 협동조합 사업체를 설립하는 구체적인 길을 열었다. 2013년 33개의 에너지협동조합이 생겨나더니 최근까지 무려 112개로 늘어났다. 다만, 실질적인 발전 사업을 벌이는 에너지협동조합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쪽은 소속 사업체가 기껏 25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아직은 공적 지원 없이 초기 안착이 쉽지 않은 탓이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발전설비 용량만으로 보면 국내 에너지협동조합은 아직 말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미하다”면서 “하지만 에너지협동조합은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창조하는 선도적인 에너지전환 기업 구실을 한다”고 미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어 “협동조합이 에너지 시민성을 발현하고 배양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햇빛발전이나 풍력발전을 추진할 때마다 벌어지는 주민 갈등을 극복하는 장치로도 협동조합은 효과적이다. 발전사업의 이익이 특정 대기업이 아니라 주민 조합원 공동의 몫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2013년 초 생겨난 경기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에너지협동조합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사업 자립의 최소 규모인 발전설비 용량 1MW(1천kW)에 이른 유일한 협동조합이기도 하다. 조합원이 700명을 넘어섰고, 지금까지 건립한 8기의 햇빛 발전기의 발전 용량은 876kW이다. 추진 중인 5기의 발전기가 정상 가동되면 발전 용량이 1500kW 규모로 늘어난다. 이창수 이사장은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청정에너지인 햇빛발전을 홍보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나아가 경제적 이익도 누리는 1석4조의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안산시민햇빛은 경기도와 안산시의 정책적 지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에 경기도의 에너지선도사업 자금 7억원을 지원받았다. 연 4%의 이자를 지급하는 시민펀드 가입도 상시적으로 받고 있다.

    원불교·한살림도 ‘햇빛 발전’ 박차

    종교계와 생활협동조합에서도 에너지협동조합 사업에 나서고 있다. 햇빛발전기를 설치할 자체 공간 확보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조직적인 조합원 모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불교는 교단 차원에서 ‘햇빛발전소가 협동조합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연에너지를 공동체 이익을 위해 협동으로 활용하는 것이 교법 정신의 사회적 실천이다.” 원불교의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은 전국 각지의 교당 옥상과 주차장 등을 활용해 22기의 햇빛발전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작게는 0.5kW부터 224kW 규모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5만원 이상 출자 조합원이 420명에 이르고, 출자총액도 3억원을 넘어섰다. 둥근햇빛발전도 연 4% 금리를 지급하는 ‘십시일반 햇빛펀드’ 가입을 받고 있다.

    생협의 맏형으로 조합원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한살림은 “한살림의 소비지와 생산지마다 햇빛발전소를 세우는 꿈”을 꾸고 있다. 한살림 조합원들이 설립한 햇빛발전협동조합의 강석찬 이사장은 “대안에너지 운동은 한살림의 생명살림 정신과 맞닿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한살림햇빛발전은 경기도 안성물류센터 옥상에 438kW의 대규모(?) 햇빛발전기를 설치했으며, 대전물류센터와 경기 횡성산내마을에도 각각 31kW의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다. 2015년 정기총회부터 올해까지 3년째 2~4%의 조합원 배당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400명 가까운 조합원들의 배당금(600만원)을 기부받아 라오스 산골마을에 햇빛발전기를 세우는 착한 사업도 벌이고 있다.

    시민발전협동조합의 싹이 힘차게 움트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도적 난관도 도처에 있다. 태양과바람의 민성환 이사장은 “민간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우니 지자체 저리 자금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고, 서울에서는 발전기를 설치할 공간 확보가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입찰 방식으로 운영되는 지금의 재생에너지 현물거래 시장에선 전기 판매 가격이 널뛰기한다”며 “햇빛발전 거래 시장이 도박장 같아 안정적 경영을 해나갈 수 없다”고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소규모 햇빛발전 사업체에 대한 발전 차액을 보상하는 기준가격(고정가격)구매제도(FIT)의 재도입도 요구한다. 전국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연합회는 한국전력이 자회사를 통해 비싼 임대료 등을 제시하며 학교 옥상의 햇빛발전 사업 싹쓸이에 나선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한 부소장은 전력 시스템의 구조 개편을 끌어갈 에너지협동조합의 미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협동조합이 햇빛발전 생산이라는 주변적 위치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 협동조합들은 햇빛발전보다 규모가 큰 풍력과 바이오가스 발전에도 뛰어들 뿐 아니라, 우리의 경우 한전이 독점한 배전과 판매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미국, 897곳 협동조합이 11% 전기 공급

    실제 미국에서는 농촌 지역 송배전 사업에서 협동조합이 지배적 위치에 있다. 미국농촌전기협동조합연합회(NRECA, www.electric.coop) 자료를 보면, 미국에선 농촌 지역에 근거를 둔 897개 전기협동조합이 47개 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전국 송배전망의 13%를 차지하고, 총발전량의 5%와 총 전기 판매량의 11%를 공급한다. 협동조합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사업체·가정·학교·농장이 1900만 곳을 넘어섰고, 협동조합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지역이 미국 전체 면적의 3분의 2에 이른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기업 소유권의 진화>의 저자인 미국 예일대 로스쿨의 헨리 한스만 교수는 “전기 없는 농촌 지역에 농민들이 직접 배전협동조합을 세웠고, 이것이 대규모의 발전 및 송전 협동조합으로 통합 발전했다”고 기술했다. 또 “협동조합은 전기 소비자와 기업의 이익이 합치하기 때문에 독점으로 인한 비용 누수를 줄일 수 있고, 이 점을 인정해 미국의 30개 주는 협동조합의 요금을 규제하지 않으며 10개 주는 협동조합에 대해 간소화된 규제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 면에서도 전기협동조합은 안정적 이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으로 평가받아, 민간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정부 지원금의 부실률이 0.001%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posted by 남한산청소년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