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명 ‘수포자’라고 불리는 이 학생들은 마치 죄인처럼 시험을 포기한다. 교실 안의 죽은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육체계의 피해를 받기 시작한다. 최초의 경험이다. 대략 5∼10%의 학생들이 수포자로 전락한다. 10명당 1명꼴로 수학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지난 6월 교육부에서 진행한 전국 평가에 따르면, 수학 학력 미달자는 전년에 비해 2%가 늘어 총 6.9% 수준이라고 한다. 시험을 본 학생들의 표본 수만 따져도 약 2천 명이 수포자라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대에 수학은 알고리즘을 짜고 논리적, 비판적 사고를 하는 데 필수적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일할 사람이 모자라다고 하는데, 있는 사람들마저 불충분한 능력을 갖게 되는 셈이다. 교육, 특히 수학교육이 뒤틀어져 있다. 하나의 씨앗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썩어버리는 상황이다. 열매를 맺기도 전에 말이다.
성문밖학교를 비롯한 전국의 15여 개 학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에서 추진 중에 <대안 수학교과서>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의 죽은 수학교육을 벗어나 살아 있는 수학교육의 본질을 복원하려는 노력이다. 수학은 유한한 인간이 자연을 해석하는 유일한 도구다. 수학을 토대로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이 뻗어나갈 수 있다.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는 수학을 모든 과학(학문)의 여왕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의 과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현대과학을 의미하지 않고 종합적 의미의 학문을 뜻한다.
<대안 수학교과서>엔 풍부한 일상의 사례가 있다. ▲ 본초자오선과 날짜변경선 ▲ 환율과 환전 ▲ 버스도착과 앱 알림 ▲ 물질의 끓는점과 기압 ▲ 시장의 물건 가격과 할인 폭 ▲ 용돈과 소비 ▲ 일교차와 플러스 마이너스 개념 ▲ 간식 나누기와 매미의 생애주기 등 다양한 사례가 제시돼 있다. <대안 수학교과서>엔 마치 퀴즈쇼를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듯 학습할 수 있도록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돼 있어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계산능력 향상을 위한 연습문제들도 포함돼 있다.
대안 수학교과서에서 강조하는 수학 학습 원리는 5가지이다. 첫째, 끈기다. 어떤 자료와 사실들을 보고 어떠한 조건에서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계속 검토해보는 것이다. 끈기야말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이다.
둘째, 관찰이다. 수학이란 패턴을 찾아는 것이다. 규칙을 발견해 더욱 일반화하고 기호로 나타나는 게 바로 수학이다. 계산만이 수학은 아니다.
셋째, 추론이다. 추론은 다른 말로 논리적 사고이다. 추론에는 연역적, 귀납적 방식 2가지가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사고의 흐름을 점검해보는 것이다. 추론을 다시 돌아보는 건 메타적 사고와 연결된다. 사고에 대한 사고, 그게 바로 수학이다.
넷째, 의사소통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복잡한 현대사회에 필수적인 능력이다. 수학이 의사소통능력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수학으로 점철돼 있다. 이따 내가 먹을 저녁밥 값을 고려하거나, 지하철을 환승해서 원하는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거나, 더 나아가 사실 말하는 것 자체도 수학과 연결돼 있다. 비논리적인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좀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을 하도록 해주는 게 바로 수학이다.
다섯째, 연결이다. 여러 개념들을 연결해 활용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 앞으로 모든 신사업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연결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연결이야말로 수학적 사고의 원리이다. 예를 들어, 매미의 생애주기가 5년, 7년, 13년 등 소수의 주기로 나타난다. 이 지점은 매미들의 먹이경쟁과 천적회피를 위한 전략으로 간주된다.
우리의 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견하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어떤가? 거꾸로 돼 있다. 교사와 교육정책 관계자들이 미리 계획하고 방향을 정한다. 방향을 정하는 자리에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에게 이미 정해진 길을 걸으라고 한다. 그러다가 제대로 못 걸으면 낙오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긴다. 교사의 역할은 단지 동기를 부여하고 흥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에서 낙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수리적 해석과 우주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한 마디로 호기심을 계속 살려나갔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고전 물리학을 깨버린 장본인이고, 현대과학의 장을 열었다. 수학만 잘 해도 기존의 관념들을 벗어나 인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성문밖학교에선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온라인에 무료로 모두 공개된 <TED ed>를 보면, 수학과 철학, 의학, 문학, 역사, 정치와 종교 등 모든 학문을 망라하는 개념들이 재미있게 시각화 돼 있다. 특히 수학 퀴즈는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필자는 이 동영상 퀴즈를 이용해 수학적 사고를 함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 바이러스 오염방 탈출 △ 좀비 탈출 다리 건너기 △ 사자와 영양의 강 건너기 △ 연주자와 악기 박스 △ 개구리 울음과 성별 △ 괴수와 비밀번호 퀴즈 등 다양하다. 이 이야기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귀엽고 깜찍한 동영상은 학생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퀴즈에 대한 해설 역시 친절하다. <TED ed> 웹페이지에선 질문을 올려 토론이 가능하고, 전문가들이 답변을 해준다. 물론 영어이지만 많은 동영상들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우리 교육이 <TED ed>만 잘 활용해도 교육의 혁명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학 공부는 어렵다. 수학을 가르치는 건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가장 중요한 건 흥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대안 수학교과서>가 혁신의 장을 열고 <TED ed>가 호기심을 불러온다면 정말 좋겠다. 시험 점수로서의 수학이 아니라 내 삶의 수학으로서 말이다.
* <광주시민저널> 제44호 2017년 12월 19일-2018년 1월 10일